실체,영성,현대인

실체, 영성과 현대인(펴내는 말)

목운 2014. 7. 10. 08:59

(이하는 저명한 정신과 의사이며 철학박사인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책을 번역한 것입니다. 저작권을 얻어 옮기는 것이 아니고 순전히 개인적인 학습을 위한 것임을 알립니다.)

요 몇 십 년 기술의 발전이 널리 두드러진 반면 동시에 인간 의식 자체의 진보 또한 전반적 수준이 최근에 더욱 갑작스럽게 향상하는 모습을 띠었다. 꽤 심오하고 양호한 모습을 보이는 이러한 변화는 1980년대 후반에 발생했는데 전 세계적으로 눈치채지 못하였지만 의식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의 등장으로 발견되었고 기술되었다. 이 방법론은 거짓과 진실, 외양과 본질을 분간하는 수단에 관한 독창적인 연구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이 특정 사안에 대하여 얼마나 진실인지 혹은 거짓인지 하는 것을 1에서 1,000까지의 간단한 로그지수로써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인간의 범주와 그것을 넘는 범위까지 가능한 모든 지식에 대해 잴 수 있다는 것이다.

 

간단한 조사와 관찰로써 알 수 있는 것처럼 (자연 재해를 제외하면) 과거와 현재에 이르는 인류의 고통은 거짓과 진실, 환상과 실체, 본질과 지각, 그리고 입증할 수 있는 실체와 의견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 그 원인이 있다. 그래서 의식 연구가 아주 오랜 기간에 걸친 모든 인간 조건을 재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범주를 제공했다. 왜냐하면 의식 연구의 잣대를 통하여 선형 및 비선형 영역을 동시에 포괄하는 하나의 맥락 및 범례의 확장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 발견은 인간 지식이 크게 향상되었음을 뜻하는데 그것은 또 진리에 대한 확인은 내용(선형)과 맥락(비선형)을 동시에 진술함으로써만 입증이 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내용이란 진술된 맥락 안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상황 윤리'의 규칙에서 이미 받아들여지고 있고 사법 제도에서도 맥락(동기, 상황, 지향, 심적 능력, 환경 등)의 중요성을 시인하고 있다.

 

입증가능한 진실을 정의할 때 모든 역사적 시도에서, 절대적이고 불변하고 정의할 수 있으며 확실히 재연할 수 있는 비교기준을 빠뜨리고 있다. 그러므로 진리를 확인하고 확증하는, 입증가능하고 실용적인 수단이 등장했다는 것은 인간의 이해력 진전에 있어서 완전히 새롭고 확장된 차원이 마련되었음을 의미한다.

 

지식이란 자연과학과 그것을 응용함으로써 확인된 운영 법칙처럼 정보나 연구가 조직화되고 체계화된 것을 말한다. 나아가 정보란 임상적이고 재연될 수 있으며 실용성이 확인될 뿐 아니라 이론적(학술적)인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임상 의학은 과학적 원칙과 그에 딸린 훈련을 적용한 이론(의식 지수 440)은 물론 기술(의식 지수 445)로 이루어진다.

 

비선형 영역에 대한 연구는 역사적으로 전통 종교는 물론 존재론, 형이상학, 신학과 철학으로 불린다. 종교적 과학(Religious Science), 유니티, 신 사상(New Thought), 크리스찬 사이언스, 무종파 교회와 같은 현대 종교 단체는 고전적, 전통적 종파의 교리간 차이를 강조하는 대신 영성의 공통 핵심 사항에 집중하고 있다.

 

역사적이고 겉보기에 다양한 각 종교가 가진 계시의 뒤에는 영적 실체의 근본적 핵심이 있다는 깨달음이 생겨났다. 그래서 현대인은 역사를 통해서 종종 핵심을 벗어나고 교리나 논쟁적 선언으로 본질이 흐려진 영적 진실의 입증가능한 핵심을 줄곧 추구하고 있다.

 

전통 종교는 종종 검증가능하고 정확히 설명된 영적 실상보다 비유적이고 교훈적인 목적의 민속 전승물인 고대 문화 속의 신화와 전설을 순진하게도 포함시키고 있다. 유명한 1925년 스콥스의 '원숭이' 재판에서 클레어런스 대로에게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을 공격할 수단을 제공한 것이 바로 전통 종교 안에 포함된 이러한 교훈적 전설들이었다. 그 역사적 논쟁은 오늘날 '진화 대 창조' 논쟁이라 불린다. '지적 설계설'의 개념은 종교와 과학 사이에 있을 수 있고 설득력 있으며 타협적이고도 균형잡힌 절충안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만일 지성이 필수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과학 자체는 존재할 수조차 없을 것이며 우주에 아무런 계획도 없다면 과학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과학은 근본적으로 계획(예를 들면 과학 법칙)의 발견과 설명에 전적으로 몰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적 설계' 가설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인간 에고의 성향과 허영 때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에고는 진리에 이르는 것보다 자기가 '옳고' 남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는 일에 보다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스콥스 재판에 이어진 논란과 같이 아직 해소되지 않은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을 제공하며 드디어는 문제를 잠재우고자 한다. 해답에 대한 반발은 합리주의자들이 생각하듯 논리적이지 않다. 유명한 가문간 분쟁에 관한 드라마인 '하트필드와 맥코이'에서처럼 인류를 둘로 분열시키는, 인간 에고의 자기애적 핵심은 진실에 대한 헌신이 아니라 갈등과 '올바름'에서 얻는 에고로 부풀어진 자기애적 이득에 몰두하는 일에서 힘을 받는다. 에고는 겸손에 대해 태생적으로 또 적극적으로 적대하며 자기 주권에 대한 은밀한 주장을 포기하느니 죽어버리거나 (실제로 수백만 명이 그렇게 함) 남을 죽이려 한다.

 

흥미롭게도 의식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1에서 1,000까지 진실의 척도상 과학은 400대인 반면 영성은 그 자체 500 이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과학의 한계는 주로 '패러다임 맹점'의 하나이며, 패러다임 한계의 소치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패러다임 맹점은 애초에 예수 그리스도의 다음과 같은 간결한 진술에 드러난다. 즉 "시저의 것은 시저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인데 이 말은 추상화 수준을 섞지 말고 선형적 영역의 실체와 비선형적 영역의 실체를 혼동하지 말라는 말이다.

 

환상과 실제 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인류 전체의 주된 장애이며 전쟁과 개인적 사회적 고통뿐 아니라 대부분 인간 문제의 원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장 기초적인 문제를 조사하는 것이 화급한 과제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수 세기 동안 인간을 혼란에 빠뜨린 주된 수수께끼가 이제 수초만에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은 보통의 생각과 상식에는 어긋난다. 모든 문제와 겉보기에 복잡한 논란들은 실상 간단히 '예'나 '아니오'로 나누어진다. 그러면 알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은 그저 어떤 질문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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