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노선은 대승(화엄 보살도)의 6바라밀의 실천과 거의 같다고 봅니다. 이미 거론한 논설 15의 경우 '일상에서 차별없는 무조건적 사랑 실천'이란 점에서 사실상 대승의 수행과 같습니다. 

즉 첫째로 결단과 지향, 몸바침이 중요한데 이것은 결코 돌아보거나 다른 것(외도)을 구하지 않는 정진바라밀에 해당합니다. 둘째로 꾸준한 명상과 기도, 독서는 기본입니다. 이것은 선정과 지혜바라밀로 볼 수 있습니다. 지관쌍수에 해당하지요. 

세번째로 중요한 게 악습을 끊고 사사로움이 전혀 없이 근신하며 의식에 빈틈이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특히 선의의 거짓말이나 과장 같은 것이 일체 없도록 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지계와 인욕에 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게 무조건적 사랑과 친절의 실천입니다. 특히 남녀노소 빈부귀천에 대한 차별의식이나 분별심이 일어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보시바라밀에 해당합니다.

요컨대 참나를 찾고 체험하여 항상 깨어 있는 상태에서 6바라밀을 하자는 것은 '편지'에서 언제나 신 의식으로 창조의 목적과 존재의 법칙에 부합하는 것, 즉 신 의식을 표현하는 것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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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카르트(1260~1328)를  소개한 우술라 플레밍은 "그리스도교가 비판받는 것 중 한가지가 신을 찾아가는 뚜렷한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그녀는 에카르트가 기술한 영원한 탄생을 신을 찾은 경지로 보고 거기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탄생을 위하여 필요한 것은 훈련과 집중, 높은 열망입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비워 무지한 사람처럼 되는 것입니다. 지눌스님 지으신 수심결에 따르면 자신의 생각, 감정, 오감에서 오는 모든 것을 부인하고 한가지에 몰입하다가 아무것도 모른다 할 때 느껴지는 '공적영지(空寂靈知)'가 바로 순수한 영의 상태입니다. 그때 느껴지는 환희심에만 의지해서 신의 인도하심을 충실히 따르면서 끝없이 덕을 닦아나갈 때 비로소 신과 완전한 합일에 이를 것입니다.


영심성찰을 하고 덕을 닦아가는 요령은 그리스도교 수덕체계에도 풍부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불교와 유교에는 각각 6바라밀과 4단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신과 합일할 때 "천년전에 흘러간 시간은 현재와 마찬가지로 바로 지금이며 신께는 천년도 지금 이 순간과 똑같이 가까운 것이다(우술라 플레밍, '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125쪽)"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금강경오가해는 "천겁이 지나도 새롭고 만년에 걸쳐 언제나 지금 같다(歷千劫而不古 亘萬歲而長今)."라고 해서 놀랍습니다. 


또 에카르트는 "나는 신에게 신을 없애달라고 기도한다(I pray God to get rid of God)."고 하고 있어서 역시 모든 모습(相)에서 벗어나야 최상의 깨달음(무상정등정각)을 얻는다는 금강경의 가르침에 부합합니다. 요컨대 모든 것을 바쳐서 신을 만나는 게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동시에 기독교 1계명의 진정한 취지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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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만큼 산다면 딱 20년 남았는데... 지금 삶의 균형이 크게 흔들리게 된 것은 더 근본적인 출구대책을 강구하라는 뜻으로 읽힌다. 실상 그동안 제법 사람구실도 하고 체면유지까지 하면서 살아온 것은 순전히 은총 덕분이었다. 


앞으로도 내 능력을 믿을 게 아니라 신께 믿고 맡기는 게 옳다. 그리고 내쪽에서 할 일은 생각과 말과 행동 모든 것을 신께 봉헌하는 쪽으로 철저히 방향전환하는 것이다. '수행해서 무엇이 된다'거나 '구원을 얻는다'는 쪽이 아니라 모든 집착을 놓아버리고 신의 의지가 관철되도록 하기 위해 소아쪽 장애물을 치우는 것이다. 


그 길에서 붙들고 있어야 할 방편은, 정직 자각 책임으로도 표현되는 성(誠)의 준수, 6바라밀의 실천과 호킨스 방하착(로버트 프로세스)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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