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정복성

9장 4

목운 2015. 3. 29. 09:43

<모든 존재의 근원>인 무한한 장은 널리 비추어나가는 빛나는 광채이며 그 결과인 창조는 영원히 하나입니다. <창조자>와 <창조>는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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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 또는 <내재하는 신>이기도 한 내면의 신체험은 <초월하는 신>에 대한 믿음과 아주 다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붓다께서는 신에 관한 모든 묘사나 이름짓기를 하지 말라고 하셨으며 <깨달음>이란 참나를 자기 정체성으로 아는 그런 조건 또는 상태입니다. 이런 조건이나 상태에서는 참나를 묘사할 소아와 같은 그런 입장이란 게 없습니다. 바로 이 조건이나 상태를 기껏 묘사해본다면 "스스로 광채가 난다"는 정도이며 그 상태에서는 <알아짐> 그 자체가 <실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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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마음)는 학습된 일단의 행동이며, 우리의 궁극 목표는 참나의 <광휘>(이것이 삶을 자비롭게 다시 맥락지어 주는데)에서 나오는 권능 덕분에 에고의 프로그램과 기능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참나의 <현존>은 모든 생명이 (진화상 우리 개개인으로 나타난 것을 포함해서) 어떻게 드러나든 자비로 체험됩니다. 따라서 책망 대신 용서가 자리하는데 그것은 이제 과도한 스트레스 없이 더 깊이 들어가도 안전하다는 표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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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현상에서 떨어져 있는 대신 현상과 일체가 됨으로써 <만유>로 드러나는 <현존>의 생생함과 <총체성>을 체험하게 됩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수동적으로 "있을" 뿐 아니라 (결단력 있는 의지로 나타나기보다) 존재라는 특성으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리하여 우주는 절묘한 아름다움과 완전함을 갖춘 선물이 되어 본유적인 <신성의 광채>와 함께 널리 비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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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는 목격자(관찰자)라는 환상조차 의식 자체 속으로 용해되는데 그것은 독자적이지 않으며 자동적입니다. 더 이상 "원인과 결과" 또는 "변화"라는 한계는 없습니다. "시간"이란 환상도 <신적 조화의 총체> 속으로 사라집니다. 존재 자체에 대한 끌림이나 거부감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드러난 것도 의식이 하나의 개념으로 식별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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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와 그 오감에서 나오는 편견을 버리면 <신성>의 <현존>이기도 한 <참나실현>이 저절로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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