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정복성

6장 1

목운 2015. 3. 6. 02:28

명상의 목적은 마음과 그 활동 그리고 지각의 한계를 초월하고 그로써 이원성을 초월하여 <일자(一者)>을 점점 더 깨닫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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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지수 600(<의식 지도>상 <깨달음>이 출현하는 수준임)을 초월하려면 목격하기(관찰하기)와의 동일시를 포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목격(관찰)은 의식 자체에 내재하는 사실상 자동적인 특성입니다. 깊이 명상해보면 우리가 이러한 특성과 무의식적으로 동일시해 왔음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목격자나 관찰자가 됨으로써 생기는 환상이나 대가를 포기하는 게 필요합니다.   

 목격하기와 관찰하기는 자동적인 것이며 목격과 관찰을 하는 "사람"이란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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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 지향은 집착끊기입니다. 특히 생각이 "내것"이고 "나"를 드러낸다는 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입니다. 실상 생각은 마음이 그러한 것처럼 그저 "그것"일 뿐입니다. 소유라는 관념은, 마음이 카메라처럼 이들 과거의 생각과 사건 그리고 기억을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에 친숙한 터에 그 생각들을 독자적인 것으로 여기는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그것들을 기록한 것은 거기에 중요성을 불어넣었기 때문일 뿐입니다. 지루한 시골길 운전에서 노변의 세세한 것들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 예를 생각해보세요. 마음 속 카메라는 가치있다고 하는 것만 기록합니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록하지 않습니다.

 기억과 재생도 머리속으로 투사한 가치 때문에 이뤄지는 것입니다. 조사해보면 기본적으로 단 하나 진짜 가치있다고 여기는 것은 그것이 "내것"이기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저 보통의 신발은 주목하지 않지만 "내 신발"에는 가치를 부여하고 따라서 기억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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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99%는 철저한 침묵이며 선형적 내용물이 없습니다. (의식측정으로 증명되는 바) 단지 1%만이 활동하지만 그것마저도 주의 집중의 결과입니다. 철저히 조사해보면 모든 생각은 고요하고 물듦이 없는 에너지 장(이것이 생각과 관념, 영상의 근원임)에서 솟아나옵니다. 마음이 추정하는 것처럼 생각은 선형적 인과관계의 결과로서 발생하는 게 아닙니다. 반대로 모든 생각은 날치가 대양에서 솟아오르듯 다른 모든 생각과 관계없이 일어납니다. 대양은  고요하고 원초적이며 '선험적인' (마음과 생각의) 조건입니다. 그것들이 어떻게든 인과관계가 있고 의미있게 상호 연관된다고 하는 관념은 사실상 사후에 해석되고 덧붙여진 것입니다. 모든 날치가 원시적 고요함으로부터 다른 날치와 상관없이 솟아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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