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정복성

5장 2

목운 2015. 3. 5. 16:26

목격하고 체험하거나 관찰하는 "누구"라 할 게 없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의 타고난 성질인데 그 과정에 영향을 끼치려는 의도라는 에너지의 소모 없이 무리없이 작용합니다. 삶의 모든 것은 하나의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주관성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면 독자적인 "나"라고 하는 감각은 줄어들면서 내용물에 대해 생각하기를 뛰어넘는 (하지만 그것을 포괄하는) 원래 거기 있는 참나의 현존을 만나게 됩니다. 이 깨달음이 우리가 마음으로 또 감정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빛>"입니다. 이 깨달음 덕분에 이제는 조명을 받는 세부사항에 초점을 두기보다 빛의 근원을 찾아 내면으로 초점을 옮겨 갑니다. 우리가 마음의 내용물을 알아챌 수 있는 것도 오직 이 <빛>에 의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경험하는 대상이나 생각하는 대상에 대해 무엇을 알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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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지향은 "행동하기"나 특정한 대상을 향하기보다 목격하는 일과 관찰하는 일을 도와주고 강화하며 집중하게 합니다. 영적인 과정은 바람이나 흐르는 물에서 자리를 잡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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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적 삶의 양식을 취하면 몸(마음)에서 목격자(관찰자)(이것이 참나와 <실체>의 <진리>에 더 근본적이고 근접합니다.)로 우리의 정체감이 수월하게 바뀝니다. 그런 다음에 목격자(관찰자)에서 "나"라는 감각을 철회하면 더욱 의식 자체의 본성(의식이란 인격이라기보다 특성입니다.)에로 옮겨갑니다. 참여자 대신에 목격자(관찰자)가 되면 얻을 수 있는 큰 이점은 목격자가 말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논평 없이 보기만 한다는 것이죠. 목격자(관찰자)는 나무보다 숲에 부합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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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 대해 마음으로 말하길 그치고 논평, 의견, 선호 및 가치판단 등을 하지 말자고 결정하거나 선택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그때 비로소 목격하는 것에 대해 평가하거나 가치를 부여하거나 편집하거나 논평하거나 편애하지 않고 그저 관찰하는 게 하나의 훈련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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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관찰자)는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은 관상적 태도입니다. 현상이란 나타났다 사라집니다. 우리는 현상을 체험하려는 욕망이나 체험 자체를 즐기려는 욕망을 포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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