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형제애 또는 보시행의 전제

목운 2015. 12. 12. 04:47
그리스도가 사막에서 40일 동안 무엇을 깨치고 어떤 변모를 했는지 궁구하지 않고 추구하는 신앙의 최고치는 형제애의 실천입니다. 그나마 배타와 보복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면 다시 지구적 기득권 세력인 수구 유태인 수준이 될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붓다가 어떤 상태에 도달했기에 그런 행에 이르렀는지 모르는 보시행은 극락을 위한 포인트 쌓기 내지 왕즉불 이데올로기가 되어 거대 불상 짓기에 그칠 뿐입니다.

우주의 근원이 신 의식 또는 무극인데 그 본성은 전지전능, 무소부재이며 사(私) 없음이고 무조건적 사랑임을 뼈저리게 체험할 때 보살행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바리새의 극렬한 저항으로 목숨을 잃을 줄 알면서 법보시를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형제애 실천이나 보시행을 하더라도 (혹여 명분을 그렇게 내세우더라도) 반드시 그리스도와 붓다께서 도달하신 영성 지능을 성취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할 것입니다.

우주의 근원(선가귀감이 말하는 한 물건<一物>)을 직접 알지 못하면 겨우 이성 내지 지성의 수준에 머물게 됩니다. 이것이 붓다와 예수께서 '당신 한테도 의지하지 말고' 직접 깨닫기를 권하신 바입니다. 물론 최종 단계 전까지는 그분들 도움이 필요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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