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참된 종교와 존재의 근원

목운 2022. 5. 25. 09:03

유불선에나 기독교에나 가장 깊은 영성 또는 정신이 새겨져 있습니다. 공부가 미진한 자들이 외견상 두드러지고자 또는 바깥 삶만 중시해서 삿된 길로 가면서 가르침을 기득권 유지의 도구로 썼기에 깊은 영성과 정신까지 경멸을 받는 일이 생깁니다.

유교의 가장 큰 오류 가운데 하나가 천하지대본을 중(中)이 아니라 농(農)이라고 외친 것입니다. 외쳤다는 표현의 속내는 누군가가 지배층에서 세뇌를 위해 강조하고 전파함으로써 이데올로기로 만들었다는 데 있습니다. 중용의 중을 지키라는(守其中) 가르침 전후 말씀을 제대로 읽은 자는 그런 짓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 더 거론한다면 우리가 나온 자리를 순전히 생물학적으로만 보아서 효를 마치 제1계명처럼 만들어버린 점입니다. 인간에 대한 보편적 사랑을 실천토록 하기 위해 효를 강조한 경전의 정신은 마땅히 존중하지만 인간존재가 생물학적인 면을 넘는다는 것은 유교 문서인 복성서를 연구하지 않더라도 중용만 제대로 읽어도 알 수 있습니다.

효를 제1계명으로 만들어버린 결과는 오직 가문과 혈족을 중시하는 결과를 가져와 중국과 조선의 왕실이 나라 전체를 지키기보다 가문만 중시하게 했고 지배층이 전부 그 지경이 되어 부패는 극에 이르고 결국 나라를 패망에 이르게 했습니다. 우리가 나온 자리는 존재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무극과 태극이며 현대 용어로 우주의식이자 신 의식 또는 순수의식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언제나 윤집궐중 하여 왕과 양반 모두가 중화(中和)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면 그렇게 쉽사리 나라가 망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윤집궐중과 중화를 제1계명으로 아는 자는 언제나 최고선만 추구할 것(樂善不倦)이며 맹자께서 말씀하신 대로 인작(人爵)이 아니라 천작(天爵)을 먼저 추구할 것인데 그런 나라는 부패할래야 부패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그 어떤 종교든 이러한 정신과 원칙에 충실하지 못하면 언제든 나라가 부패하여 위태로움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제대로 된 종교라면 신통력이나 복락을 직접 구하지 않습니다. 먼저 우리 존재가 나온 자리, 즉 존재의 근원이 어딘지를 탐구하고 그 자리를 찾아 일치하는 것만을 최고의 과제로 삼습니다. 그렇게 할 때 세상 복락이나 치유, 여타 문제의 해결은 그냥 1+1처럼 따라오는 일이라는 게 모든 영성에 새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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