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일상이 도량

목운 2022. 5. 29. 03:45

저보다 두어살 많은 분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요컨대 오랫동안 수행공부를 했고 지금은 그리스도의 편지 방법대로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경제적으로 더 어렵게 된 처지를 얘기하셨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어려움에 직면하면 주변에 손쉬운 도움에 의지하다 사기를 당한다든지 해서 더 어려워지신 것 같습니다. 마치 제가 빠졌던 구렁텅이를 다시 보는 것 같아서 묘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나온 길이니까 쉽사리 제 체험을 말씀드렸습니다.

결론적으로 몇가지 소감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먼저 수행공부는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제 경우도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잘 나갈 때는 영성 서적을 읽어도 '그래 맞아 감동이야, 어디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조금 맛을 들이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한데 한 마음으로, 즉 일념으로 성과가 보일 때까지 하지 않으면 그 효험을 누릴 수 없습니다.

이 공부는 존재의 근원과 최대한 가까워지고 끊임없이 소통하는 삶을 살겠다는 단단한 결심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자나 깨나 이 한 가지 생각은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그 일을 위해 매일 명상과 기도, 독서와 글쓰기를 하는 게 제 경험상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일상생활을 할 때는 각자 찾아낸 염송기도를 쉬지 않고 하는 것이 마음을 모으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아울러 세상 소식이나 세상의 생각을 멀리하는 노력을 병행합니다.

두 번째는 일상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합니다. 가장 큰 것이 경제적 안정이므로 충분하고도 규칙적인 수입을 만들기 위해서는 체면을 버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소득 기회를 다 찾아보고 비교하면서 가장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합니다. 산을 오를 때 골인지점을 보면서 마음이 다급해지면 더 지치지만 발 밑만 보면서 차근차근 가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골인지점에 와있는 체험을 한 번쯤은 하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꾸준히 가는 것입니다.

제 경우 먼저 빚에서 벗어나려고 아내와 힘을 합쳐 매일매일 그저 견뎌나갔습니다. 그러면서 위로가 되는 책을 꾸준히 읽으며 열심히 기도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견디기 어려울 때 전화할 수 있는 지혜로운 분이 한 분쯤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다보니 실업급여도 세 번째 받고 있습니다. 그렇게 7~8년 지나니 이제 경제적으로 상당히 안정되었고 무엇보다도 아이들도 좋은 직장을 찾아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도 지혜는 좀처럼 빠르게 늘지 않고 에고 집착도 생각만큼 사라지지 않으며 사람을 용서하는 일도 힘겨운 게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이 세 가지를 전보다는 잘 하고 있다는 느낌이 생기고 더 나아질 거라는 기분도 듭니다. 아내의 이런저런 지적도 성내지 않으며 참아 받으며 꿈의 경고에 대해서도 더 귀를 잘 기울입니다. 칼 융에 따르면 꿈이란 영적 성장에서 장애가 되는 것들을 잘 보여준다고 합니다.

이제 매일이 기적이나 축복처럼 느끼는 일이 많고 죄책도 줄고 있으며 화해도 빠르게 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내게 손해를 끼친 이들을 좀더 많이 용서하는 것 같으며 일상의 작은 일들을 잘 즐깁니다. 요컨대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 전보다 쉬워졌는지, 내가 나에 대해 더 기분 좋은지, 운동을 더 하고 맛있는 것도 탐심 없이 즐기는지 등이 수행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부를 잘 하고 있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스승들은 말합니다. '깨닫기 전에 나무하고 물 길었다면 깨다고 나서도 나무하고 물 긷는 것이다'라고. 하지만 내면은 거의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유인과 성인  (0) 2022.07.10
목욕물 비유와 추상적 계승  (0) 2022.06.08
초대합니다  (2) 2022.05.28
참된 종교와 존재의 근원  (0) 2022.05.25
무집착과 애덕의 실천  (0) 2022.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