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크하르트 입문

'버리고 떠나 있음' 해설

목운 2020. 7. 29. 05:42

에크하르트는 토속어, 즉 독일어로 대중을 위한 강론을 한 아마도 최초의 성직자였습니다. 그의 시대에 인쇄술이 발달했다면 어쩌면 루터의 시대는 앞당겨졌을지도 모릅니다. 이부현 님의 선집에 독일어 주요 설교가 네 편 번역돼 있는데 이 설교들에서도 그의 생각의 핵심이면서 앞에 소개한 세 가지 논고의 주제가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버리고 떠나 있음'이란 제목이 붙은 설교에 저는 '신인합일에 대한 고찰'이란 요약을 붙여봤습니다. 왜냐하면 신인합일이란 명상의 궁극목적이면서 제가 배우는 명상에서도 "자신을 신께 바치고 모든 정성을 다하여 신의 의지만을 따르고자(206쪽)"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편지' 메시지에 따르면 명상에서 "삶을 스스로 감당하려는 의지를 비우"라고 합니다.

에크하르트는 "병이든 가난이든 굶주림이든 목마름이든 또는 그 무엇이든 신이 그대에게 내리시는 것이나 내리시지 않는 것이나 그대에게 주는 것이나 주지 않는 것이나 모두 다 그대에게 최상의 것이다." 어떤 일이든 신의 의지가 아니면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이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을 공손히 감수하며 견디라는 불가의 '인욕바라밀'과 같아보입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가장 극심한 고통이라도 그것을 신에게 온 최상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을 원해야 한다고 말합니다(206쪽). 즉 "그것이 다르게 이루어졌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또는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면 상황이 더 좋아졌을 텐데"라고 느끼거나 생각하거나 말하는 한 우리는 결코 평화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208쪽).

여기까지 읽으니 제가 고통론이라 이름붙였던 '신적 위로의 책'의 밑받침이 되는 설교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식으로 신의 의지를 알게 되면 내가 저지른 죄악을 포함해서 그 어떤 상실이든 아파하고 곱씹을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원수 사랑 또는 죄의식의 포기가 아주 쉬워진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어쨌든 신비주의라는 것은 오랜 기도와 깊은 수양의 결과 다다르는 것이기에 세상이 쉽게 말하는 것과 다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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