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크하르트 입문

동서 수행의 공통점

목운 2020. 9. 6. 08:52

10개월째 에크하르트를 읽고 있습니다. '고귀한 사람'의 내용 가운데 아우구스티누스의 의식 성장 여섯 단계를 소개했지만 이 설교는 동아시아의 보살도에 조응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극기복례나 멸정복성으로 요약할 수 있는 수행의 요점에 대해서는 동양 방법론과 일치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솔로몬의 노래인 아가 1:5를 인용하면서 아가의 주인공이 매력적임에도 얼굴이 검게 보이는 사유를 설명하는데 사연인즉 포도원을 돌보느라 햇볕에 그을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에크하르트는 최고의 피조물인 해로 인해 우리 존재에 새겨져 있는 "신의 상"이 덮여진 상태가 바로 그을린 피부와 같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잠언을 인용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알려줍니다. 즉 "은으로부터 녹을 닦아 내거라. 그러면 가장 빛나는 그릇이 빛을 발하면서 그 모습을 찬란히 드러낼 것이다. (잠언 25:4)"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녹을 닦아내면 신의 형상, 신의 아들이 영혼 속에서 빛을 발하며 찬란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이부현 선집, 194쪽)"라고 합니다. 

그래서 고귀한 사람은 길을 떠났는데 그 이유는 바로 "모든 상들과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서 그 모든 것들과 전적으로 멀어지고 달라져야 했기 때문이었다. (같은 쪽)"고 합니다. 바로 이 점이 동양 영성에서도 꼭같이 강조되고 있다는 것이 제 관찰입니다. 특히 "모든 상(allen Bildem)"을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하는 점은 금강경에서 "무릇 세상의 모든 상(相)은 모두 헛되고 거짓이니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보면 나를 보리라."고 하신 붓다의 말씀에 조응합니다. 

신유학의 개창자인 이고 선생은 에고(情)을 지워내는 것이 성(性)을 구현해서 성인이 되는 것으로 보았고 마하리쉬를 비롯한 힌두 영성의 최고봉들도 에고를 잊어버리고 참나로 사는 것을 비결로 가르칩니다. 이것을 위해 가장 잘 쓰이는 비유가 참나 또는 심진여를 가리는 소아(小我)나 심생멸을 구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구름이 걷히면 햇빛이 모든 것을 감싸듯 심진여가 찬란히 드러나 지복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실상 수행의 요점과 도정(道程)에 대해 숨겨진 것은 없습니다.

소위 신비주의라는 것도 알고 보면 모두 그 과정에서 체험하는 일에 대한 진술이 대부분입니다. 더구나 여기에 대해 그리스도는 더 이상 논의가 필요 없을 정도로 분명히 말씀해 놓으셨으니 그것은 마태 16:24(마르코 8:34, 루가 9:23)의 말씀입니다. 요한은 더 세게 말했는데 바로 12:25입니다(우연히도 세상이 정한 예수 탄생일과 숫자 배열이 같습니다). 요한은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라는 것인데 즉 몸과의 동일시를 벗어나는 게 깨달음의 비결이라는 인도 영성의 가르침과 같은 것으로 알아듣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제가 끌리는 말씀은 요한 12:24에 있는 "밀알 하나가...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밀알이 죽는 것은 완전한 파괴이지만 거기에서 수백만 수천만의 열매가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광대한 의식의 상승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읽어야 할 것입니다. 이 죽음은 순교자들처럼 예외적으로 육신의 죽음인 경우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마음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는 것을 말한다고 봅니다. 그 요령과 노하우는 학인에 따라, 스승에 따라, 수천 가지가 될 수도 있으니 선택하고 실천하는 일만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