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멸종 저항과 정좌(靜坐)

목운 2020. 4. 27. 08:16

자아를 벗어나는 시원한 체험을 하고, 걸리는 것 없이 기쁨과 평화를 누리며 모든 존재에 친절하게 살다가 연기처럼 다음 세상으로 가는 게 꿈입니다. 하지만 공부가 느린 것은 마하리쉬 님 말씀대로 근기가 젖은 석탄 정도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마하리쉬 님은 근기를 화약-숯-젖은 석탄으로 나누었습니다. 가장 낮은 근기라면 1만 시간은 투입해야 하지 싶습니다. 따져 보니 1만 시간이란 일요일엔 쉬더라도 하루 8시간씩 공부해서 대략 4년이 걸립니다. 대학을 4년 과정으로 짜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천하지대본인 중(中)을 잡고 거기에 머무는 일을 저는 천인합일을 이루기 위한 공부로 보며 바이블이 말하는, 자기를 버리고 진리에 몰입하는 일과 같다고 봅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이 일을 목마른 자처럼 절실하게 하되 글쓰기나 악기연주를 연습하는 자처럼 하라고 합니다.

삶이 피폐해지고 전지구적 멸종저항에 직면하게 된 것은 동서에서 핵심적으로 중요하다고 본 이 공부를 대충 하거나 '다 안다'고 생각하고 아무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와 미국만 놓고 봐도 4년제 우수 대학을 나온 자들은 철저히 카르텔을 형성하여 이익집단의 기능을 합니다.

대대적이고도 근본적인 방향전환이 필요한데 동양은 대학-중용울 실천하고 서양은 에크하르트를 실천하는 데서 시작해야 하지 싶습니다! 다시 말하면 밖으로 나돌아다니는 시간 못지 않게 매일 일정 시간 정좌를 실천하는 일이 긴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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