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구원과 복음

목운 2020. 12. 16. 05:14

"가시적 '존재'가 가지는 쌍둥이 추동력을 그들 마음과 심장에서 정화하는 데 필요한 단계들만 행하면 '고통으로부터의 구원'이 그들 손 안에 있다는 '복음'을 얼마나 즐겁게 이야기해 줄 것인가? 나는 그것이 이해력과 자기 통제력만 있으면 되는 매우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63쪽)

근본 실체에 대하여, 그리고 존재의 근원과 창조 과정에 대하여 완전한 깨달음을 얻고 나서 바로 창조 원리에 어긋나는 인간의 고통을 숙고하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생각은 붓다와 그리스도가 똑같이 직면한 문제라고 앞에서 거론했습니다. 그리고 실상 그 해법도 같은데 결국 인간의 고통은 자신의 생각과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고통과 불행을 초래하는 모든 관념을 제거하는 데로 모아집니다. 그것은 동시에 입에 발린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고통의 문제 해결이 곧 구원이라는 것을 위 말씀은 암시합니다.

그러한 고통의 문제 해결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인간 내면에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복음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진화 과정에서 생존을 위해 필요한 자극-반응에서 나온 성질들은 그저 지상 삶에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이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주기보다 질곡이 된다는 깨달음이 어쩌면 인간의 근본적 깨달음이고 붓다와 그리스도께서 깨달은 바이기도 합니다. '편지'가 한 걸음 더 나아갔다면 모든 존재의 바탕에 작용하는 '결합-배척'의 추동력을 거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뒤에 나오지만 인간 심성에도 새겨져 있는 결합-배척의 추동력은 모든 존재가 가시화하는 과정에 작용하는 전기와 자기의 추동력과 같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이해하고 통제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것은 바로 결합-배척의 쌍둥이 추동력을 생각과 감정에서 지워냄으로써 '아버지-창조력'과 하나가 될 때 비로소 고통은 가능하지 않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와 붓다가 해낸 일이 그것이고 우리도 그대로 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 바로 복음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와 붓다가 행하신 대로 똑같은 길을 감으로써 그분들이 도달한 경지에 도달하겠다는 것이 바로 ‘편지’의 노선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너희가 노력하여 당시 나의 '의식 상태'로 들어온다면 그것은 너희 이해에 엄청난 도움을 줄 것이며 기적적인 치유와 물 위를 걸은 일과 같은 많은 기적을 분명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63쪽)"고 하는 것입니다. 명상을 하고 그리스도의 생각을 우리 마음에 새겨 우리 것으로 만들 때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기적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 점은 이미 앞에서 동아시아의 여섯 가지 신통을 설명할 때 거론한 것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