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고통의 원인과 지복의 비결

목운 2021. 3. 6. 05:31

“나는 창조자, 즉 ‘우주 의식’에게 인간이 왜 그토록 많은 고통과 악에 시달리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인간이 체험하는 모든 문제는 자아의 중심점(과학이 ‘에고’로 부르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인간성(personality)’ 속에서 자신을 드러냈다. 즉 자신을 비판이나 여타 공격으로부터 방어하려는 ‘욕구’와... 타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을 모두 차지하려는 ‘욕구’로 자신을 드러냈다.” (325-326쪽)

첫 번째 편지에 이어 그리스도가 인간의 고통에 대하여 에덴에서의 범죄와 그것을 징벌하는 야훼라는 신화로써 설명하는 유대-그리스도교 전통에 반대하여 고통의 원인을 인간의 타고난 이기심에서 찾고자 했다는 점에서 ‘편지’는 동양 영성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에 저는 동양 영성, 그 가운데도 동아시아 영성이 새 시대의 대안적 영성이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즉 신 의식(우주 의식)을 나누어 받지만 개체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이익을 택하고 손해를 피하는(好利避害)’ 본성, 또는 탐욕과 성냄을 핵으로 하는 본성이 고통을 부른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신에게, 또는 신 앞에서 죄를 짓고 또 그것을 보고 심판하고 벌주는 신 개념은 “편의상 만들어낸 인위적인 개념(331쪽)”이므로 그것을 아예 빼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이 피조물에게 공격을 받거나 피해를 입고 화를 낸다는 생각은 완전히 오류입니다.

동아시아에서는 저 에고를 희로애구애오욕을 내는 정(情)으로 표현하며 특히 불가에서는 탐욕과 성냄에 더하여 인간이 태생적으로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어리석음, 즉 치심을 보태 삼독(三毒)이라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편지’는 유교 및 불교와 더불어 지복에 드는 비결로서 에고를 소멸하는 일이 핵심적으로 중요하다는 데 의견이 일치하고 있습니다.

우리 책은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서 모든 피조물은 우주 의식에 내재되어 있는 두 가지 추동력을 통해 창조에 참여한다고 합니다. 즉 전기력에 해당하는 ‘활동의 주체가 되는 추동력’과 자기력에 해당하는 ‘결합-배척의 추동력’이 그것입니다. 특별히 결합-배척의 추동력은 개체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무엇이든 좋은 것을 끌어당기고 소유함으로써 안전을 추구하며, 또 원하지 않는 것은 반발하고 밀어내는 동력입니다.

바로 이 추동력이 옳고 그름을 제대로 식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사회를 파멸시키기도 하는 것입니다. 인간 의식 수준이 낮은 시대에 사람들에게 이러한 부작용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죄를 심판하고 벌주는 공포의 신을 전제하는 신화가 개발된 것입니다. 반복하자면 모든 피조물 안에서 작용하는 결합-배척의 추동력이 인간에게서 작용할 때 질병과 불행과 궁핍을 수반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카르마 법칙의 다른 설명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