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고통의 문제와 탈없이 대박을 누리기

목운 2023. 5. 12. 17:52

에크하르트는 고통의 근본 원인이 "사랑과 애착" 때문이며 "모든 것에서 자신을 깡그리 비워" 신인합일을 이루면 "내 고통이 신 가운데 자리하여 신과 함께 하니 어떻게 고통이 고통일 수 있는가?"라고 말합니다. 우리 존재가 신성으로 완전히 물들면 우리가 고통이라 여기는 것은 신을 거쳐야 하기에 우리는 고통을 모른다는 게 에크하르트 님 가르침입니다.

이 가르침을 커다란 행운이나 횡재에 대해 응용해 보았습니다. 아직 믿음과 지혜가 부족하고 앎이 부족한 우리는 복권의 당첨이나 백마 탄 왕자와의 결혼 같은 행운을 당연한 것으로 알지 못합니다. 오히려 두려워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에고를 지워내는 노력을 꾸준히 하고 그 결과 우리가 신성 안에 머물게 되면 모든 주권은 신에게 있으며 모든 것이 신의 것이기 때문에 엄청난 행운으로 생각하던 것도 모두 우리 것이 됩니다.

모든 것이 신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필요한 것을 청하고 그에 따라 허여되는 것을 누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을 누리더라도 이미 자아라 할 만한 게 없으므로 자신의 영광으로 삼거나 자랑하는 일은 없습니다. 이 방법만이 가장 안전하게 복을 구하는 길이라 할 수 있으며 그 복 때문에 교만해지거나 타락해버릴 일도 없습니다. 그러니 평소에 우리가 나온 자리인 존재의 근원에 묻고 구하며 자아라 할 만한 모든 것을 비웠다면 내키는 대로 해도 걸림이 없는 경지, 즉 공자님이 말하신 종심소욕불유구에 이르렀다 할 수 있습니다.

저는 4대 성인들이 고통을 면하는 법에 대해 더 많이 말씀하신 것은 진화가 덜 된 인간 사회에 부정적인 현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커다란 복락과 행운에 대해서 더 많이 강조하는 일이 부자연스러웠을 뿐이었지 우리가 복락을 누리는 게 못 마땅해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가르침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커다란 복락을 누리는 일에 대해 마다하지 않으셨다 봅니다. 그 증거로서 부처님 제자 유마힐을 들 수 있는데 이 분은 요즘으로 치면 재벌급 부자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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