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정복성 109

5장 2

목격하고 체험하거나 관찰하는 "누구"라 할 게 없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의 타고난 성질인데 그 과정에 영향을 끼치려는 의도라는 에너지의 소모 없이 무리없이 작용합니다. 삶의 모든 것은 하나의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주관성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면 독자적인 "나"라고 하는 감각은 줄어들면서 내용물에 대해 생각하기를 뛰어넘는 (하지만 그것을 포괄하는) 원래 거기 있는 참나의 현존을 만나게 됩니다. 이 깨달음이 우리가 마음으로 또 감정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입니다. 이 깨달음 덕분에 이제는 조명을 받는 세부사항에 초점을 두기보다 빛의 근원을 찾아 내면으로 초점을 옮겨 갑니다. 우리가 마음의 내용물을 알아챌 수 있는 것도 오직 이 에 의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경험하는 대상이나 생각..

멸정복성 2015.03.05

5장 1

마음의 장 전체를 관찰해보면 생각의 흐름 자체에서 나오는 특정 내용물에 무슨 가치가 있는 것 같지 않다는 게 분명합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서고 의식의 다음 차원으로 들어가서 생각의 흐름을 바라보고 관찰하며 알아차리고 등록하는 게 무엇인지 물어봐야 합니다. 눈이 관찰 대상에게서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귀가 들리는 것에 영향받지 않는 것과 똑같은 식으로 현재 진행중인 목격의 과정은 목격되는 대상으로부터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한 생각을 하는 주체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목격하는 행위 뒤에 목격자가 있는 게 아닙니다. 목격하는 일은 독자적인 일이 아니며 의식 자체의 타고난 측면이자 특성입니다. 우리는 생각의 내용물에 개입하지 않고 떨어져 있을 수 있으며 관찰이나 목격을 할 때 특정 관점을 취할 자유가..

멸정복성 2015.03.05

4장 4

에고(마음)와의 동일시를 해체하는 과제는 영적 진화의 주된 초점이며 역사상 가장 학식이 있는 사람들까지 좌절했던 난제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에고(마음)가 자신을 처리 기능과 동일시하는 오류인데, 즉 현상이 선형 세계에 자리하기 때문에 저절로 선형 세계와 동일시하게 됩니다. 이것은 삶의 체험이 몸이기 때문에 물질적 실체와 연관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오는 자연적 결과입니다. 주된 문제는 주관성의 실제 근원을 잘못 아는 것과 그것이 비국지적임에도 국지적인 것으로 잘못 추정하는 데 있습니다. ---*---영적 탐구의 과정에서 우리는 특정한 "나" 또는 한계지어진 "나"가 아니라, "나임"(즉 "나다"라는 것)을 아는 (그리고 "나다"라는 것의 존재를 감지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기를 기대합니..

멸정복성 2015.03.05

4장 3

에고(마음)는 새로운 것에 끌리고 따라서 재미있는 형상과 감각을 열광적으로 추구합니다. 언제나 현존하며 그저 주시하기만 하면 되는 고요하고 형체없는 바탕에 대해 관심을 가짐으로써 저런 상황을 거부하고 대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고요한 배경이 없으면 소리를 분간할 수 없는 것에 비견할 수 있습니다.---*---인생에서 불가피한 것들을 기꺼이 수용함으로써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종교적(영적) 회의주의자라 하더라도 내면을 들여다보면 근본적이고 더 이상 파고들 수 없는 생명의 내면적 특성인 인식 능력과 의식, 그리고 주관성이라는 바탕이 존재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의식이 없으면 개인은 "알지"(즉 자기가 "안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의식이란 그 존재의 내용물과 관계없는 존재의 ..

멸정복성 2015.03.03

4장 2

결국에는 "나"라고 하는 것이 내용물이나 자료가 아니고 프로그램의 내용물에서 여러 단계가 제거된 비독자적인 장(場)라는 깨달음이 생깁니다. 그때 우리는 참여자나 주체가 아니라 관객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무엇에 관하여 안다"는 것은, 정보 자체는 친숙하지만 그 실체와 진실은 여전히 경험하지 못한 상태임을 의미합니다. 확실성에 도달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참으로 안다는 것은 무엇무엇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때 주체와 아는 자는 하나가 됩니다. "무엇에 관하여 아는 것"이 심리적인 것인 반면 경험으로 아는 것은 확실성에 도달했음을 의미합니다. ---*---의식적 앎의 장은 시간을 따라가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고요하며 자동적이고 수고할 필요가 없고 평화로우며 모든 것을 담고 있으며 프로그..

멸정복성 2015.03.03

4장 1

답은 간단합니다. 초점을 안으로 돌려 모든 것을 체험하는 절대적 주관성에 집중하세요. 삶의 모든 표현에 수반되는 주체감의 성격을 관찰하세요. 딱지를 붙이지 말고, 언제나 거기 있으면서 더 이상 축소되지 않는 주관성의 기저를 항상 (모든 찰나와 모든 순간과 모든 환경에서) 주시하세요. 그것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 보는 것, 아는 것 등 어떤 형식이든 체험의 본질은 바로 이 주관성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주관적 체험이 바로 언제나 있던 것임을 깨우치세요. 그것이 없다면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없을 겁니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고 물으십시오. 이 질문이 효과를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무언중에 ..

멸정복성 2015.03.03

제2부 제4장

제4장 : 주관성 "밖에" 있는 것으로 감지되는 객관적 세계는 모습을 띠고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습니다. 한편 내면의 존재상태인 주관적 체험의 세계가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정체성에 대해 어떻게 압니까? 당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호킨스 박사는 학습자들에게 내면으로 들어가 의식이 독자적인 게 아니라는 사실과 앎의 장 자체를 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의식이란, 보통은 에고(마음)가 지각을 통해 처리하는 현상의 내용물에 집중하기 때문에 주목받지 않고 넘어갑니다.

멸정복성 2015.03.03

3장 11

"생각하기"란 자료와 기호, 그리고 말을 마음이 제멋대로 심상화함으로써 처리하는 것인데 바로 이것이 영적 진보의 주된 장애물이자 마음과의 동일시를 초월하는 일의 주된 장애물입니다. ---*--- 우리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살아나갈 수 없다고 하는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행동에 책임이 있는 하나의 "나"가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제 할 일을 합니다. "내가 이것을 했다; 내가 그 생각을 했다; 내가 그것을 결정했다."고 말하는 것은 에고의 허영일 뿐입니다. 그런 "나"라고 하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자동적입니다. "나"라고 하는 ..

멸정복성 2015.03.03

3장 10

결국 모습 있는 것은 모습 없는 것으로 되어 있으며, 그 둘이 하나이자 같은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깨달음이 있기까지는 모습 자체가 주의를 흩뜨리고 깨달음을 지체시키는 것이니 극구 피해야 할 것입니다. ---*--- 문 : 어떻게 해야 영적 진보가 쉬워집니까? 답 : 그것은 당연한 관심사죠. 선택을 함으로써 주의력이 습관적인 마음의 틀이 되어 자리잡습니다. 모든 순간 안에 깨달음에 필요한 모든 요소가 있습니다. 그저 외양뿐인 것이 아니라 본질을 찾으십시오. 있는 그대로 보면 모든 것이 완벽합니다. 그것이 빛나고 새로운 것이든 녹슬고 더러운 것이든 "되어 있기로 한" 바로 그대로 있습니다. 형용사의 사용을 피하세요.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안의 것을 투사한 것이며 마음이 만들어낸 자질이기..

멸정복성 2015.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