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환상

'신비주의'에 해당되는 글 4건

  1. '편지'의 핵심 수행법
  2. 논설 1과 신비주의의 길
  3. 신비주의 영성의 공통점
  4. 천국과 그 노하우

'편지'의 핵심 수행법

그리스도의 편지

제가 이해하는 한 '편지'의 핵심 수행법은 기독교 신비주의입니다. 그러니까 기독교 전통에서 제도 교회가 의심할 만큼 제대로 그리스도 의식에 접근한 수행법이 바로 마이스터 에카르트가 설교했던 신비주의 방법입니다. 즉 궁극의 실체 체험을 기반으로 하는 신인합일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이 체험 없이 그저 이데올로기로 작동했던 제도 교회는 이러한 스승들을 언제나 의심하고 심판했습니다. 여성의 경우는 마녀로 몰려 처형당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주 간단히 말해서 에고를 완전히 잊어버리는 경지에 가면 바로 신적 능력과 체험을 얻는 것인데 '편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에고 소멸을 말하고 있습니다. '편지'를 더더욱 신뢰케 하는 것은 그렇게 실체 체험을 하고 나면 그리스도마저도 의지하지 말라고 합니다. 백척간두 진일보라고 선(禪)의 전통에서는 부처에게도 의지하지 말고 조사에게도 의지하지 말고 끝까지 혼자 가라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편지'는 불교나 이슬람 신비가들과 공동 운명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구절을 가져다 주를 붙여 봅니다.

"실험실에서 너희 손을 지나간 전기가 분젠 버너에 불을 붙이듯 너희 <생명력>이 발하는 빛도 너희 영향권에 들어오는 모든 이를 이롭게 할 것이다. 이것이 창조 배후의 의도였다. 너희는 마음과 가슴을 통해 우주의 창조 의식을 표현하도록 의도되었다. 나 <그리스도>는 그 방법을 보여주기 위해 이 시대에 왔다. (80~81쪽)"

그러기 위해서 우리 존재 자체가 <조건없는 사랑> 또는 <무주상 보시>가 되어야 하고 이 목적을 위해 우리 개인의 인간 의식에서 '부정적인 것(80쪽)' 또는 '인간적인 기분과 생각(82쪽)'을 제거해야 한다고 합니다. 에고를 제거함으로써 그 영향력이 100억짜리가 될지 아니면 그리스도나 붓다처럼 무한한 값어치를 가질지 결정된다고 봅니다. 하여튼 우리 에고의 영향력을 무한소로 하려는 노력은 그만큼 위대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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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1과 신비주의의 길

그리스도의 편지

'편지'의 메시지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반복하여 학습하도록 권유하고 있습니다. 실제 편지에서도 같은 주제를 여러번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도 핵심 메시지를 요약 정리하는 방식으로 되풀이해 보겠습니다. 논설 1에서 제시되는 내용은 나머지 논설은 물론 책 전체를 통해 반복되면서 강조되는 사항입니다.


첫째는 편지가 기존의 신 개념, 특히 하늘 권좌 같은 곳에 앉아서 심판하고 벌주는 유아적 신 개념(역사적으로는 부족신 내지 통치 이데올로기로 작용한 신 개념이 모두 이와 같습니다.)에서 조속히 벗어나  모든 사람이 존재에 관한 초월적 지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도가 사막에서 체험한 것이 바로 창조에 관한 비밀과 존재에 관한 심오한 진실이며 바로 그것에 기반한 길만이 앞으로 인류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동안 세계적인 상식이 된 양자물리학을 포함한 첨단 물리학의 성과 및 끌어당김의 법칙, 신념의 법칙 등의 내용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논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게 인상깊었던 것은 기존의 교회에 출석하는 것,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저도 수십년 경험했지만 기존 교회를 감싸는 원리 내지 분위기가 주로 에고 의식 또는 세속의 인간 의식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더 이상 초월적 인식의 실천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둘째는 편지가 제시하는 길은 그리스도의 길이라 부르고 그 길은 동시에 깨달음의 길이라고 합니다. 깨달음의 어원상 성서에 번개(lightning)처럼 이뤄지는 재림이 바로 세계적으로 인간 의식이 깨어나는 것(enlightening)과 비슷하여 책에서도 재림의 회화적 표현이었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논설 1은 깨달음에 갑작스런 깨달음과 점진적인 깨달음이 있다고 하는데 마치 불가의 돈오와 점오를 설명하는 듯합니다. 즉 존재의 근원에 대한 갑작스런 체험으로 정신이 근본적으로 바뀔(mind-blowing) 수 있다고 하는 게 전자이고 보통의 참된 깨달음이란 신 의식이 인간 의식을 대체하는 과정으로서 후자의 경우입니다.

후자의 길은 바로 편지를 탐구하고 그리스도의 길을 감으로써 가능하다고 합니다. 꾸준히 명상하고 에고를 정화해 나갈 때 점진적으로 통찰력이 생기고 빛의 조명을 받아 세상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볼 뿐만 아니라 창조주와 삶에 대한 태도가 항구적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솔직히 거의 40년에 가까운 천주교회 출석을 통해서 느낀 것은 구원의 확신을 교회에 의존하게 하는 시스템이어서 오류라고 보았는데 편지는 결국 깨달음과 구원은 개인이 직접 신 체험을 하여 확신을 얻는 것이며 나중에는 그리스도에게도 의존하지 말라고 하여 제가 최근에 공부한 불교 선사(禪師)들의 가르침과 일치합니다. 모쪼록 편지를 접하게 되신 분들의 꾸준한 정진과 궁극의 깨달음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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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 영성의 공통점

단상
종교에서 어느 종파에 속하냐 하는 것을 '디노미네이션'이라 하는데 쉽게 말해서 커밍아웃이죠. 제 경우 무종교, 무종파라 했는데 커밍아웃 하자면 학술용어론 신비주의입니다. 신비주의에는 마이스터 에카르트를 위시한 기독교 계열, 플로티누스를 위시한 철학적 노선, 카발라-조하르에 명시된 바의 유태교 계열, 도교와 천부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불선 계열이 있는데 이제까지 제가 공부한 깜냥으론 그 핵심이 모두 같습니다.

이들이 같은 이유는 인간성의 근원이 같은 데다 그 체험을 전한 분들의 체험이 같기 때문입니다. 그 체험을 지칭하는 용어로 신체험, 깨달음, 견성 등등으로 갈릴 뿐입니다 (물론 깨달음에서도 상승방향으로 여러 단계가 있으므로 진술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공통 요점을 적시해보면 (1) 인간성(인간 의식, 에고, 情)은 신성(신 의식, 참나, 性)에서 나왔고 신성을 질료로 이뤄짐, (2) 인간성이 신성으로 변모하여 신성으로 사는 것이 삶의 목적이자 소명임, (3) 변모의 비결은 인간성의 정화(또는 소멸, 망각)로써 주도권을 신성에 넘기는 것이며 그 과정은 점진적 상향운동으로서 각 근기에 따라 시간이 걸립니다.

적어놓고 보니 대략 직관과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의 편지'는 바로 신비주의의 공통 영성 플러스 현대 물리학의 성과를 담고 있습니다. 진지한 첨단 물리학자들은 모두 사물의 본질, 궁극의 실재에 대한 신비가의 체험을 이해하고 있으며 호킨스 같은 분은 물리학이 깨달음으로 가는 두어가지 길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비주의 내지 영성과 과학 사이에 어떻게 다리를 놓을까 하는 게 이번 밀레니엄의 최대 과제이며 '편지'와 호킨스의 의식 지도가 여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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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그 노하우

그리스도의 편지
'그리스도의 편지' 두번째를 보면 책 전체에서 계속 반복되는 주제가 또 나옵니다. 죄를 전제하는 회개(repenting)라는 말이 나오는데 '편지'는 기존 유태교-기독교의 죄와 속죄 개념을 부인하기 때문에 회개란 기독교 신비주의의 '아닌 것을 떠난다(去非)'는 말로 이해해야 합니다. 제가 볼 땐 에고 원리와 완전히 결별하겠다는 결단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을 에고에 묶어두는 가장 큰 구멍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대개 소유욕, 엘리트 의식, 애갈, 선의의 거짓말 등과 같은 형태로 이미 우리 속에 깊이 뿌리내린 무엇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고 나서 지속적인 정화작업(편지도 cleansing이란 말을 씁니다)을 합니다. 이때 크게 도움이 되는 게 호킨스 님의 '레팅고'라고 봅니다.

그런 식으로 에고 영향력을 지워나가면 점진적으로 신 의식이 우리 존재와 환경, 체험을 지배하게 된다고 '편지'는 말합니다. 어느 순간 신 의식과 완전히 합일하게 되면 그때의 상태를 천국이라 하는 것이고 그 상태에서 신성을 표현하는 게 우리 존재와 삶의 목적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발을 들인 길이 바로 이 길입니다. 이상 118~119쪽에 대하여 주석삼아 해설을 붙여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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