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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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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에 해당되는 글 4

  1. 2016.05.31 그리스도의 편지가 주는 약속
  2. 2015.08.30 종(또는 종복)과 대리인
  3. 2014.09.10 이 땅에서 항구한 평화와 행복
  4. 2013.10.08 출구대책
에고에 대해 죽기(dying to self)는 성서에는 소아를 잊기(forget self)로 되어 있죠. 524쪽에는 '에고로부터의 해방'이란 말을 쓰고 있습니다. 이 말은 제가 열심히 소개하는 기적수업 번역본 제목과도 일치합니다. 동시에 유교의 극기복례의 극기, 수기치인의 수기와도 맥이 같다고 봅니다.

기독교 신비주의 삼단계에서 신인합일로 가는 첫걸음이 거비정화인데 '아닌 것을 떠나서 깨끗이 한다'는 뜻으로 결국 에고를 죽음에 이르도록 닦아낸다는 속뜻을 가집니다. 각설하고 어제에 이어 공부의 마무리에 관한 말씀을 인용해 봅니다.

"에고로부터 해방을 성취한 사람은 어떻게 행동할까? 결국 그런 사람은 두려움이 완전히 없어진다. 어디를 가든지 보호받으리라는 절대적인 확신이 있다. 위험 가능성 있는 일을 겪게 되더라도 아무 탈 없이 빠져나올 것이다... 그는 어디에 있든지 모든 부정적 결과로부터 보호받는다. (524~525쪽)"

호킨스 박사는 본인의 체험에서 이 상태를 '무한한 보호, 무한한 안전(안심)'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쪼록 저는 죽는 날까지 이 공부를 놓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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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또는 종복)과 대리인

2015.08.30 06:26 | Posted by 목운
제 전공이 경제학입니다만 경제학에도 영성과 관련지을 수 있는 유익한 개념이 한두가지 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리인에 대한 이론은 유기적 조직의 감시비용과 관련된 중요한 이론입니다. 요컨대 주식회사와 같은 법인이 설립목적에 맞도록 구성원들이 제대로 기능하는지 감시하기 위해 여러가지 내부통제 수단을 도입합니다. 이때 대표이사와 종업원들은 주주의 대리인이며 이들이 주주이익에 제대로 복무하는지 감시하는 모든 비용이 감시 비용이 되겠죠.

한편 이 블로그가 전제하는 것처럼 인간 존재를 참나-소아로 보면 소아는 참나의 대리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제는 대승불교, 신유학, 기독교에 공통적이기도 합니다. 세 패러다임이 용어만 다르게 구사할 뿐 핵심은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소아가 참나의 뜻을 완전히 파악해서 그대로 살 때 당연히 감시비용은 제로가 될 것이고 참나가 무소부재, 전지전능한데다 사랑과 평화 자체라면 소아의 능력과 복지는 무한대가 될 것입니다.

신약성서에 많이 나오는 종과 주인의 관계는 물론 성자와 성부의 관계까지 이런 맥락으로 이해하면 좋습니다. 가까운 예로서 이재용씨가 자기 일가보다 주주 이익에만 복무한다면 그는 마땅히 가장 정당한 대표이사로 대접받을 것입니다. 영성에서는 소아인 우리가 참나(또는 하느님, 주인공)에게 감시비용 제로인 대표이사가 되는 길을 택하는 게 가장 현명하다는 것을 시사하겠지요. 여기에서 난점은 참나의 뜻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뜻을 파악하는 방법과 모범을 4대 성인과 그분들의 가르침을 철저히 준수한 사람에게서 찾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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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항구한 평화와 행복

2014.09.10 20:34 | Posted by 목운

그저 세상에 잘 적응하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초탈한 상태에서 나비처럼 자유롭게 사는 길은 무엇일까? 참나/근원/신에게 운명을 온전히 맡기고 소아를 통하여 참나를 나투는 삶. 정혜쌍수에 진력하면서 내 무한한 잠재력을 성취함으로써 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답인 것 같다. 그러기 위해 다음 기도를 왼다.


"당신 뜻에 따르옵니다. 주님, 제가 당신 종복이 되게 하소서. 당신 영광을 위하여 제가 무한한 잠재력을 성취하게 하소서!(I align myself with Thee. Oh, Lord, I may be Thy servant. I may fulfill my infinite potential to Thy glory! David Hawk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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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대책

2013.10.08 06:05 | Posted by 목운

아버지만큼 산다면 딱 20년 남았는데... 지금 삶의 균형이 크게 흔들리게 된 것은 더 근본적인 출구대책을 강구하라는 뜻으로 읽힌다. 실상 그동안 제법 사람구실도 하고 체면유지까지 하면서 살아온 것은 순전히 은총 덕분이었다. 


앞으로도 내 능력을 믿을 게 아니라 신께 믿고 맡기는 게 옳다. 그리고 내쪽에서 할 일은 생각과 말과 행동 모든 것을 신께 봉헌하는 쪽으로 철저히 방향전환하는 것이다. '수행해서 무엇이 된다'거나 '구원을 얻는다'는 쪽이 아니라 모든 집착을 놓아버리고 신의 의지가 관철되도록 하기 위해 소아쪽 장애물을 치우는 것이다. 


그 길에서 붙들고 있어야 할 방편은, 정직 자각 책임으로도 표현되는 성(誠)의 준수, 6바라밀의 실천과 호킨스 방하착(로버트 프로세스)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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