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요령과 요점

유불선과 그리스도의 계명

목운 2021. 6. 16. 08:24

탄허스님은 경전에 초등생용, 대학원생용 말씀이 섞여 있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논어에서도 이인편의 인의 실천과 마지막의 윤집궐중이 대학원생용인 것 같습니다. 인의 실천에서 단 한 순간도 벗어나면 안 된다는 게 밥먹을 시간, 또는 황급하거나 넘어지는 순간에도 벗어나지 말라는 것이고 그게 가능하려면 윤집궐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사를 처리하면서 그게 가능하겠냐 해서 돌아가려는 길이 사추덕의 실천이니 십계명의 준수니 하는 것인데 이고 선생은 그런 건 다 에고로 에고를 어떻게 해보려는 것이니 생각 끊기를 통해서 인의 자리에 들어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을 4서3경과 유교의 성인을 거론하여 논했습니다. 복성서가 그 논문인데 염계와 주희를 거쳐 신유학이 되었지만 사실상 불교나 도교 수행과 다름 없습니다.

그렇게 보면 동아시아에서 인의 상태는 도의 상태와 같고 인에서 나오는 행은 이원적 세계에서 따져서 나오는 게 아니고 사람이나 일을 만나면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행이고 그 행이 진리에 딱딱 들어맞는다는 것이 중용이 말하는 화요 대학이 말하는 격물치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도의 자리에 들어앉으려면 거기에 올인해야 한다며 속세와 인연을 끊는 것이 소승이고 그런 소승을 비판한 것이 당말 려말 신유학입니다.

결론은 신애(하느님 사랑=윤집궐중)와 인인애(이웃 사랑=화의 실천)의 계명은 두 바퀴로써 균형있게 또 상호 대조점검하며 구현되어야 하며 그때 비로소 도가 다스리는, 즉 하늘나라가 실현되는 것인데 저는 평천하라는 말이 하늘나라의 실현과 같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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