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요령과 요점

공부와 고통

목운 2020. 9. 28. 09:07

얼마 전에 에크하르트의 '신적 위로의 책'을 소개했는데 거기에서 그분은 고통의 의미를 서른 몇 가지로 논하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 자체로 좋아하는 것은 병이지만 향상의 기회로 삼아 온 것은 고금동서가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아래 두 글에서도 고난과 고통을 겪는다 하면 의식이 한 단계 상승하는 것 또는 깨달음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댓구로 글을 쓰는 동양적 전통 때문에 번뇌와 난관도 거론되고 있는데 번뇌의 체험은 업의 부채 상환, 난관의 체험은 정진의 계기로 본다는 점에서 결국 같은 맥락입니다. 요컨대 고통과 난관의 가치는 깨달음과 정진에 기여하는 데서 나옵니다. 다른 말로 보살도가 지향하는 의식의 끝없는 향상에 기여할 때 그것들은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면  의식은 어디까지 향상해야 할까요?
인간으로서 최고에 이른 그리스도와 붓다 수준에 갈 때까지 쉬지 않아야 합니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할 때 오늘날 부패한 종교처럼 된다고 봅니다. 세상에 잘 통하는 정도로는 말 그대로 통속과 부패의 온상이 됩니다. 소크라테스나 그리스도처럼 세상이 지겹게 여겨서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보살의 최고 경지를 법운지 또는 머리에 물을 붓는다고 해서 관정지라고 합니다. 우연히도 그리스도의 세례는 관정지가 상징하는 바와 일치합니다. 그때 비로소 무조건적 사랑이기도 한 인(仁)이 몸에 배어 치유와 가르침을 베풀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당연히 업상의 부채가 청산되어  현세 문제와 다음 차원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봅니다. 보통은 사람들이 붙들지 않는 한 다음 차원으로 넘어간다고 합니다. 불교의 정진바라밀과 대학의 지어지선이 지향하는 바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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