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논설과 메시지

법칙 - 창조의 원리

목운 2021. 7. 5. 08:14

다음 ‘법칙’은 생명에서 지극히 큰 자리를 차지하므로 의문을 가질 수 없다. 이 법칙은 곧바르며 일관되지만 우주에 스스로 드러나는 ‘창조적 지력’이 없다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 창조 ‘원리’, 즉 ‘창조력’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이 원리는 영원하기 때문에 현재형으로 말한다.]

​‘창조력‘의 ’본성‘은 ’성장‘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언제나 성장한다.

​‘성장’은 보편적 특성이자 존재의 곧바른 원리다.

​2. ‘창조력’의 ‘본성’은 ‘영양공급’이며 ‘양육’이다. ‘영양공급’과 ‘양육’은 그에 대해 고찰하려 애쓰는 모든 이에게 자명한, 정상적이며 놀랄 정도로 유기적인 육체 내 과정이다. 영양분은 개체의 선호에 따라 모든 생물에게 제공되며 그들은 건강과 복지를 위해 음식을 소화한다. 새끼가 태어나면 어미 안에 이미 모유가 생겨나 새 생명이 곧 먹을 수 있도록 대기한다. 이 점 또한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신비로운 존재 원리다.

​조직에 그러한 뜻밖의 기능이 있어 종족의 생존을 보장하는 일이 어째서 태초부터 존재하는 것인지 어떤 과학도 설명하지 못한다. 실제 그 기능 자체는 이해할 수 있을지라도 그러한 기능의 ‘원인’과 주체는 알지 못한다.

​3. ‘창조력’의 ‘본성’은 ‘치유’다.

​‘치유’는 존재의 자연스런 특성이며 자연의 ‘완성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는데 그 기능은 개체의 안위를 보장하는 것임에도 무엇이 치유 활동을 촉발하는지 아무도 설명하지 못한다.

​4. ‘창조력’의 ‘본성’은 ‘보호’다.

​‘보호’는 ‘창조력’의 불가결한 특성이며 세상에서 일견 ‘기적적인’ 모든 활동은 보호조치에 맞추어 마련돼 있다.

​[오늘날 의학 교과서는 인간 몸에 있는 다양한 보호체계에 대해 쓰고 있지만 내가 사막에 있을 때 다음과 같은 ‘지적 창조력’에 내재하는 ‘보호’의 특성을 나는 ‘보았다.’]

​식물, 새, 동물 등을 보고 영감을 받자 세부까지 치밀하게 몸 안에 모든 ‘보호조치’가 얼마나 자애롭게 마련되었는지를 볼 수 있었다.

5. 이와 같은 ‘보호’와 결합된 역동적 특성은 ‘필요의 충족’이다.

​이 점은 생명체의 피부를 보호하고 추울 때 온기와 더울 때 방어막을 제공하는 털과 가죽 및 깃털을 마련한 데서 분명히 드러난다. 나는 또 소중하고도 예민한 손가락과 발가락이 모두 발톱과 손톱으로 적절히 보호되도록 부드럽게 마감된 것을 보았다. 눈썹은 땀에서부터 눈을 보호하고 눈꺼풀과 속눈썹은 먼지나 기타 해로운 것들에서 눈을 보호한다. 나는 파리가 달라붙는 동물들이 아주 신속히 그것들을 쫓을 수 있도록 하는 꼬리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았다.

​모든 생물의 안위에 대해 작고 하찮아 보이지만 그토록 심오한 의미가 있는 이들 소소한 육체적 특징 안에 얼마나 복되고 환희로운 사랑과 배려가 드러났던가? 기본적인 육체의 설계에 보태진 이들 육체의 호사스러움은, 피조물이 편안하고 복되어서 그러한 ‘호사스런 대목’이 없었다면 인간과 짐승이 겪었을 스트레스가 없도록 한 ‘지성’의 산물이었다는 게 분명하다!

​자연적 기능들까지 그토록 지적이고 편안하게 구상되어 있기에 감사의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모든 것이 그렇게 깔끔하고도 보이지 않게 갖춰져 있다. 인류가 그렇게 멋지게 조성된 생명을 받은 것이 얼마나 축복되고 행운인 것인지! 나는 다시 드높이 찬양했으며 환희에 찬 놀라움이 가득한 내면에서 솟구치는 황금빛 위로 드높여졌다. 왜냐하면 그때 나는 생물들이 스트레스 없이 풍성하고도 자애로운 ‘창조력’‘본성’을 표현하려 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사지, 즉 팔과 손, 다리와 발, 손가락과 발가락을 가지고 돌아다니고 달리고 뛰어오르고 춤추면서 내면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인류가 날고 날개가 자라길 갈망하여 전심으로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면 마침내 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덧붙이기 시작하리라는 것까지 나는 느꼈다.

​내가 ‘우주의 지적 창조력’‘작업’을 이끄는 ‘사랑’을 완전히 의식하게 된 것은 ‘창조력’‘본성’을 이해한 그 시점이었다.

​내가 이 ‘사랑‘을 곰곰이 생각하자 나는 창조의 ’어머니‘가 양육하고 보호하며 필요를 채워주고 새끼를 치유하고자 애쓰는 것을 깨달았는데 그것이 바로 ’사랑‘의 활동이다.

6. 피조물에게 개별적 형체와 ‘존재’를 준 자애로운 지적 창조력의 태생적 특성은 ‘일’이다.

​그것은 우리를 위해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서 일한다.

​그 ‘일’은 언제나, 항상, 언제나 ‘사랑’에 의해 유발된다.

​이러한 우주적 계시에 나는 환희와 경이로움을 가득 느꼈다. 우리는 얼마나 굉장한 세상에 살고 있는가. 그것은 내가 ‘만물의 근원‘에 대한 ’진리‘를 깨닫고 총체적으로 본 것 가운데 최정점이었다.

​살, 뼈, 피에서 눈과 머리칼에 이르기까지 몸의 다양한 부분을 만들기 위해 협동하고 조화를 이루는 정신으로 일하는 ‘무한히 작은 실체들’로 된 다양한 집합체로 이루어진 육체의 실상을 나는 ‘보았다.’

이들 집합체 간의 유일한 차이는, 그들의 공통 목적을 위하여 필요한 작업의 형태에 있다. 몸 속에서 이뤄지는 지적이고 목적의식 있는 그 모든 것의 배후에 존재하는 ‘신적 추동력’은, 사람들이 계획한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합심해서 일할 때에 보는 인간 행동의 영감이자 기반이다. 그들은 ‘창조력’에서 지성과 목적 의식을 가져오지만 세속적 작업이나 여타 공동 사업에 관여할 때는 논란과 불화라는 불가피한 특성 때문에 인간 행동은 아주 많이 다르다.

​나는 피조물 안에서 질서, 협동, 조화, 매일의 생산 등 언제 어디서나 인간은 필적할 수 없이 영원히 작동하는 ‘지적 창조성’이라는 ‘무한한 힘’을 깨닫게 되었다.

7. ‘생존’ ‘창조력’의 자연스런 특성이었다. 모든 생물이 자라고 질병과 상처를 치유받으며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영양분을 섭취하고 땅 위에서 생존을 보존하기 위해 후손을 낳도록 하는 가장 훌륭한 대책이 언제나 마련되었다. 이것은 인류가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이었으며, ‘그’ 활동은 해가 바뀌어도 일관된다. 태양, 달, 별이 모두 수천 년 간 제 자리를 지켰으며, 그것들이 모두 자기 운동 궤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간이 깨달았다. 이 모든 현상은 창조에서의 생존을 위한 거대 구조에 속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영원한 불꽃이 존속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즉 우주의 창조된 모든 것의 실체 안에 숨겨져 있는 ‘자애로운 지적 창조력’의 불꽃 말이다. 따라서 이 세상은, 지금 차원 너머에 있는 ‘자애로운 지적 창조력’의 숨겨진 세상을 비추는 그림자와 모상일 뿐이다. 창조계 총체의 ‘실체’는 이러한 가시계를 초월하여 있다.

8. ‘자애로운 지적 창조력’의 고유한 특성은 ‘리듬’이다.

​나는 세상에서 작용하는 ‘리듬’이 있는 것을 알았다.

​모든 것이 생명을 꽃피우고 싹틔우며 성장의 계절이 무르익어 수확기에 이르며 식물의 존속을 보장하는 씨앗의 생산에 이르게 하는 계절의 지배를 받는다. 그리고는 점차 시들어가고 휴식의 겨울이 이어진다. 그러나 창조되어 생명 있는 것으로서 사라지는 것은 없다. 태양과 달이 우주 안에서 이러한 성질을 표현한다. 이러한 리듬은 생명체의 암컷에서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창조된 모든 것은 모습을 드러내고 수확할 적절한 때가 있다. 그러니 인간 자체가 성장과 성공의 파도와 겨울잠의 파도에 지배되는 것은 당연하다.

9. ‘자애로운 지적 창조력’의 고유한 특성은 ‘법칙’과 ‘질서’였다.

​창조에서 볼 수 있는 곧바른 질서와 신뢰성은 몸 안의 작은 단위(‘세포’)를 다스릴 뿐 아니라 그 어떤 인간의 노력도 훨씬 뛰어 넘는 놀라운 것이었다. 따라서 전체 우주는 완전한 ‘법칙’과 ‘질서’가 있는 시스템에 의해 작동하였다.

​나는 ‘창조력’이 모든 생물에 대하여 지적 목적의식과 자애로운 관심을 드러내는 것을 영적으로 아주 높고 높은 수준에서 깨달았다. 나는 생명이란 게 희미하고 형체 없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어마어마하게 높이 고양된 존재 상태와 지각과 광휘와 환희로서 실제 느낄 수 있는 자애로운 지적 창조력이란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내가 그것과 하나며(즉 그것으로 채워졌으며) 주변 모든 것과 하나였고 하늘 및 별과 하나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가장 굉장하고 놀라운 것은 ‘아버지-창조력’의 ‘본성’과 ‘기능’은 인류의 복지를 공고히 하는 환희, 아름다움 및 편안함을 창조하기 위해 일하고, 내적 환희, 건강, 편안함을 제공하기 위해 인류 안에서 일하며, 새로운 깨달음과 지식으로 인류를 고무하기 위해 인간을 통하여 일하는 것이었다.

​영광스런 창조에 관한 멋진 광경이 내개 떠올랐다. 일단 우리가 ‘지적 창조력’과 진정으로 하나가 되어 정화된 통로와 도구가 되면 우리는 의식이 점차 상승하여 마음과 심장을 통하여 ‘우주적 창조력’의 참 ‘본성’을 표현하게 될 것이다. ‘지상 삶’이란 언제나 ‘천국 상태’가 되고 영원한 생명에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것이 창조 배후의 참된 목표라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간이 진화해오고 발전해온 목적이 바로 이것이었다는 깨달음이 터질 듯한 자신감과 자애로운 환희와 함께 떠올랐다.

​그러나 바로 오늘날에는 그 행동은 지극히 불완전하지만, 미래에는 그 과오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창조력’과 하나이며 그 ‘창조력’은 인류 안에 있어서 생명과 팔다리 및 그가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 모든 것을 깨닫자 나는 환희의 절정과 드높은 황홀경으로 올려져서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내 안의 ‘힘’이 팽창하여 내 몸이 해체될 것이 틀림없다고 느꼈다. 나는 ‘빛’에 휩싸였고 ‘그것’이 내 주변에서 사막 광경을 비추는 것을 보았다.

​내 마음은 찬미의 노래를 불렀다.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서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그침없이 일하는 ‘자애로운 창조력’은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가!

창조란 기적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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