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禅과 놓아버리기

견성을 위한 선 공부란 일어나는 마음을 조작하거나 변화시키는 게 아니고 그것뿐인 듯이 바라보는 것이라 한다. 동시에 자기(Self)에게 온통 내어맡기라 한다. 청혜스님이 말하는 저 '자기'란 참나인 것 같다. 참나-에고 또는 영혼-육신의 언어 사용은 이분법에 빠지게 하는 약점이 있다.견성하고 나면 마치 에고가 사라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참나가 확연히 드러나면서 그 빛이 에고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도 방법론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실은 모두 자기(Self)의 작용이리라. 평상심이 도(道)며 분별망상에 속지 않으면 바로 참나의 작용이라 말하는 이유도 같은 이유 같다. 선(禅)은 감정과 싸우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사라질 때까지 느껴주라는 놓아버리기 방법과 통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선 공부가..

禅 공부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공부하라는 것은 꼭 그대로 아무 생각 없는 상태로 들어가라는 것이란다. 다급한 마음으로 전심전력 공부하라는 뜻이 아니라고 한다. 모든 현상이 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것, 즉 홀로그램임을 즉각 인지하라는 것이다.물질 세계에서 생존하도록 하기 위해 심어진 본능과 지능, 수많은 생명 현상과 물리 현상을 체험하도록 한, 이 존재와 삶 자체가 그저 우주심의 바라봄이라면 - 그것이 사실이고 진실이라면 모든 것이 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不曾生不曾滅) 것이다. 그 사실과 진실을 제대로 볼 수 있다면(應觀法界性) 견성하는 것이리라. 나라는 것, 내가 있다라고 하는 것 모두가 관념이기에 그것을 아상(我相)이라 한다. 아상이 없다면, 그리하여 내가 죽어 있다면,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듯 없는 듯,..

공부의 요체

무슨 일이 있든 행복하기를 선택하고 결단하라는 마이클 싱어의 말과 불이문의 법문을 종합하면 첫 번째 화살을 맞았다 하더라도 심판, 후회, 자책 등으로 두 번째 화살을 자초하지 말아야 한다.동시에 내면에서 끝없이 주절대는 놈의 소리를 완전히 무시하고 고요히 침묵할 때 만나는, 모습도 한계도 없는 공(空)에 집중한다. 생각과 감정은 저절로 생겼다 사라지는 구름과 같다.셋째 선지식의 법문을 계속 들으며 기존의 관점, 판단, 해석 등 모든 고정관념을 버린다. 당처(当處), 즉 이름 없는 자리[도(道) 또는 야훼]에 내 존재 모두를 내맡긴다. 종합컨대 결국 내 마음이란 게 사라지도록 하는 거다.

禅과 신비주의

며칠 전 부모 미생전에 나는 있었는지 하는, 선가의 화두를 SNS에 적었다. 의문을 가지는 게 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게 선가의 가르침이기도 하다.전심법요 법문을 들으면서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알 것도 같다. 황벽 선사께서는 임종때를 거론하며 우리 본성은, 날 때 생기지도 않고 죽을 때 사라지지도 않는다고 하신다.그것은 '이름도 모양도 없는 텅빔(空)이며 주객이 없다(湛然圓寂 心境一如)'고 하신다. 그러니 세상 살이에 익숙한 보통 사람으로는 감을 잡을 수 없다.그리하여 타협책으로 나온 게 성전 혹은 사원을 지어 거기에 상(相)이 있는 것들을 만들어 놓고 섬긴다. 이미 썼듯 야훼란 '이름 없음'이란 말이다. 신비주의란 알 수 없는 그 신비를 깨쳐 인생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다. 그답이 바로 깨달음, 즉 ..

단상 2025.04.22

얀테의 법칙

우연히 얀테의 법칙이라는 걸 접했다. 북유럽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기 좋은 단서다. 북유럽은 한때 자살률 높기로 유명했고 요즘은 높은 소득을 누리는 사회주의적 국가들이라는 인식이 있다. 복지가 잘 된 국가들이라고 안다.나도 빈곤선과 복지문제를 주제로 한 학부 졸업논문에서 뮈르달이라는 스웨덴 경제학자를 다룬 적 있다. 내 식으로 간단히 이해하면 자신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얀테의 법칙 1조가 그 정신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요컨대 얀테의 법칙은 매우 선적(禅的)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여러 생명현상 가운데 하나라고, 아무런 가치판단이나 분별 없이 본다는 것은 (잘못하면 자살에 이를 수도 있는) '나 하나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라는 선가의 가르침과도 통한다. 생명이란 우주적 가치와 의미가 있기도 하지만..

단상 2025.04.21

선가귀감 첫머리에 나오는 '나지도 죽지도 않는 한 물건'에 대해 혜능 선사는 두 제자, 신회와 회양에게 똑같이 묻는다.신회는 '모든 부처의 근본이자 자신의 불성'이라 답한다. 하지만 이 답은 알음알이에서 나오는 답이라 '너는 그냥 강의하는 중은 되겠다'고 합니다. 깨달음 이전의 경허에 해당한다.회양은 답을 못하다가 8년만에 말씀드리길 '거기에 이름을 붙이면 어긋납니다'고 답하고 비로소 혜능의 적통을 물려받는다. 깨달음 이후의 경허에 해당한다.이미 다루었지만 선불교는 이름붙일 수 없는 그것과 하나가 되는 걸 목표삼는다. 기독교의 신비적 합일, 즉 신과 하나되기에 다름 아니다. 그러기 위해 모든 착각과 분별 및 비진리를 배척한다. 그래서 불이문이다. 이것은 신의 이름을 야훼라 한 기독교 전통과 같다. 왜냐하..

전심법요 입문 2025.04.19

결심

참말로 내 합리적인 기대수명이 15년 안팎이고 길어야 20년쯤일텐데 이제 남은 가장 중요한 원은 마음의 완전한 자유다. 자유자재하여 가족을 설득하여 곡기를 끊고 갈 수 있을 정도로 공부가 되면 좋겠다. 마지막 의지처로 정통 선불교를 실천하는 선원을 만났으니 다행이다. 이 선원을 만난 것은 유혹에 빠져 큰 곤란을 겪고 몇달 동안 간절히 외친 결과다. 마침 1세기 이상 검증된 황벽 선사의 교재 전심법요로 법문을 하기에 더 이상 증거도 필요 없다.호킨스 박사 의식 측정에 의하면 황벽 선사는 950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공부에 내 운명이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머리에 불이 붙은 듯 다급한 마음으로 전념코자 한다. 신성 쪽에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완전히 내맡기는 일이 필요하다.

단상 2025.04.12

성탄의 의미

'매일이 크리스마스다'라고 외칠 때 걱정근심과 이별하고 기쁨만 있을 것이라는 의미가 있지요. 그것은 내 안에 그리스도가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탄생했다는 것은 이승을 살되 신의 아들로서 산다는 것입니다. 마침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에 대해 청혜스님이 쓴 글(붙임 참조)을 만났기에 가져옵니다.내 삶에 그리스도가 탄생하거나 부처님이 탄생하거나 효과는 같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만 그 완전한 탄생을 위해서는 분별망상으로 된 사고구조와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마치 2찍으로 살던 사람이 이재명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관점이 완전히 거꾸로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대전환은 근기에 따라 일순간에 되는 사람이 있다면 평생 걸리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붙임)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단상 2025.04.11

견성

1. 에고로써 에고를 닦아 최선의 인간이 된다는 것은 길을 잘못 드는 것이다. 견성으로 한번 돌파함으로써 출발 테이프를 끊고 가는 게 정석이다.2. 공부가 잘 된다거나 집착을 끊었다거나 하는 생각이 드는 한 길을 잘못 드는 것이다. 진짜로 담배를 끊었을 때 담배를 끊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3. 알려고 하기보다 궁금해 하라. 깨닫는 노하우를 안다고 해서 또는 깨달음을 이해한다고 해서 견성하는 게 아니다. 그냥 분별망상에서 나오고 생각을 쉬어라. 4. 이 공부는 죽기 전에 죽어 나, 즉 아상이 없어지는 공부다. 나라는 것이 없으면 바로 천국이다. 물론 제대로 한 번 죽는 체험에 의지하여 끝까지 진보하는 일이다. 5. 단 하나의 소망을 가지고 전념할 가치가 있음을 아는 일이 필요하며 그때 비로소 진심..

선불교와 현대 영성

1. 야훼 곧 부처(佛)다. 기독교의 신이나 불교의 부처나 이름 붙일 수 없는 데다 이름을 붙인 것이기 때문이다. (붙임 1과2)2. 이름 붙일 수 없는 그것(一物)에 도달하는 것 또는 그것이 되는 것(합일로도 말함)이 양 종교의 목표다. 기독교는 그것을 하늘나라라 했고 불교는 열반이라 했다. 3. 그 목표에 이르는 길은 알음알이(知解)가 아니라 분별망상에서 벗어나는 불이문(不二门, non-duality)밖에 없다. 선불교의 불이문은 무구무착(無求無着)의 방하착(放下着)이 핵심인데 이 지점이 서양 최신 영성이 얘기하는 놓아버리기(letting go)와 같다. (붙임 3 참조)4. 다만 선불교의 가르침은 우리 불가에 그대로 전수되고 있고 서양은 라마나 마하리쉬를 모범으로 하여 레스터 레븐슨, 마이클 싱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