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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와 무지의 길

십자가의 요한 성인은 신비주의를 실천한 분입니다. 어느 종교에든 신인합일을 체험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 체험 이후 이단 혹은 무속으로 빠지거나 미친 놈 취급 받은 사례도 다수 보고되었습니다.천주교 안에 그런 일은 수없이 반복되었으나 교권에 도움이 되면 살아 남았고 해롭다 판단되면 이단 심판을 받았습니다. 십자가의 요한은 전자이고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후자입니다. 정작 옮기려는 것은 십자가의 요한이 했던 다음 말씀입니다. 이와 같은 체험은 동아시아의 선(禅)에도 풍부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여기에 도달토록 하려고 선사들이 할도 하고 방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무지에 도달했고, 그곳에 머물렀다 - 무지, 인간의 지식을 벗어난 곳. 문은 찾을 수 없었지만, 무지를 통해 나아갔다. 거룩함과 평화만이 있는 곳으로 ..

물방울과 바다

제가 듣는 법문을 이곳에서 자주 나누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제게 유익이 되고 그 다음엔 누군가에게도 유익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바다에서 튀어 오른 물방울 비유입니다. 파도 칠 때 떠오른 물방울이 스승에게 묻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바다가 될 수 있나요?" 스승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습니다. 뭐라고 했을까요?어떤 물방울은 불교학 박사학위를 따고 교수가 되어 최고 강사가 되는 데 답이 있는 줄 알고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어떤 물방울은 히말라야 토굴에 가서 면벽수행을 하는 데 답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어떤 물방울은 매일 호흡 수련을 해서 활연관통하는 데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스승이 왜 옷었을까요? 이미 바다인 자가 와서 바다가 되게 해 달라고 심각..

마하리쉬와 선(禅)

마하리쉬 님은 "자신을 변모시킴으로써 세상을 바꿀 것이고 내면의 빛을 발견함으로써 세상을 밝히게 된다"고 했다. 이 말씀을 선(禪)으로 이해하면 견성하고 분별심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방하착 하면 삼세일체불을 알게 된다는 것으로 듣게 된다. 즉 돈오하고 나서 깨달음 이후 이분법의 망상을 내려 놓는 오후(悟後) 공부를 평생 하면 그 자체로 세상을 밝히고 세상을 바꾸는 일이 될 것이라고 새긴다. 흔한 말로 세상에 나가 출세함으로써 세상에 기여하는 역할을 못했더라도 세상에 도움이 될 방법이 있으니 참 좋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마하리쉬 님은 아무런 세상 직책이 없었지만 20세기 이래 주변 사람은 물론 동서양 영성 추구자들에게 큰 별이 되었다.그분의 체험 가운데 인상 깊은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얼마 뒤에 우..

유불선과 신비주의

1. 부정관은 몸이 썩어 없어지는 과정을 묵상하는 방편이다. 그 목적은 몸을 포괄하는, 나지도 죽지도 않는 '나'를 깨우치기 위함이다. 이 '나'를 깨우쳐 그 '나'가 주인이 되어 살 때 참된 자유가 있다는 게 선가의 가르침이다.2. 마음을 일으켜 찾는 게 아니기에 마음을 쉬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저 내려놓으라(放下, letting go) 한다. 이것이 비결이다. 3. 진짜, 절실하게 그 무엇에도 걸리지 않는 자유를 바라는지, 그것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지, 그것을 한 시도 잊지 않는지에 대해 '예스'라고 할 수 있으면 꼭 이뤄진다고 배운다. 아상이 없어진 뒤 깨우쳐진 '나'는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 할 것 같다. 그것은 모양도 없고 이름도 없기 때문이다. 선가귀감 1장과 도덕경 1장이 말하는 게 바로 이..

분별망상과 불이문

사필귀정이란 명제가 진실이란 것은, 나와는 관계 없이 우주 법칙이 되어야 하는 바대로 되어진다는 뜻이리라. 내 올바름에 집착해서 올바르지 못하게 보이는 이들보다 내가 낫고 그래서 내가 승리해야 한다는 데 이르는 것은 분별망상의 소치다.불이문에 입문한 자라면 모든 판단에서 벗어나야 할지니 그것은 판단이란 게 근본적으로 이분법을 취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도대체 아무런 심판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곧 불이문에 들어가라는 선사(禅師)들 가르침과 같은 것이라 본다.매번 선거에서 내가 옳고 따라서 내가 이겨야 한다는 의식 때문에 이기면 들뜨고 지면 실망해서 시사 뉴스와 단절하곤 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여러 지인과 절교하다시피 했다. 그저 분별망상이 아직 떨어지지 않았으니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단상 2025.06.06

야훼, 신(神), 도(道)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낸다는 게 금강경의 요점 중에 요점이다. 생각과 감정은 마치 허공의 구름과 같이 제 멋대로 생겼다 지나가는 것이지 그것이 '나'도 아니고 내것도 아니다.그래서 비결이라 하면 그것을 나라거나 내것이라거나 치부하지 말고 담담하게 지나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내버려 두는 게 핵심이니 영어로는 '레팅 고(letting go)'요 한자로는 방하(放下)다.어떤 생각에 머물게 되면 두려움이 생기고 어떤 감정에 빠지면 화가 나기도 하는 것이다. 그냥 어린 애처럼 단순해지면 된다. 놀이터 가다가 넘어지면 울기도 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놀이에 빠지기도 한다.서너 살 때 자전거에 치어 머리에 상처가 있지만 그것에 대한 기억이 1도 없다. 당연히 그로 인한 마음의 상처라 할 만한 게 전혀 없다. ..

선거 승리와 내 마음가짐

당선자의 여의도 메시지를 듣고 나니 오늘 출근해서 가져야 할 마음 자세가 그려집니다. 당선자의 말대로 정치하는 이들은 서로 대결하고 경쟁하다가 등지기도 하지만 공화국 주인인 우리는 공동 생산을 위해, 또는 외세의 침략에 대비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제 경우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6~7십대여서 거의 반대편 정당을 지지하기에 출근 전부터 그들을 무시하거나 경멸하는 마음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계엄 사태를 겪으며 십여 명에 이르는 동문 및 지인과 결별하기도 했지만 이제라도 그들에 대해 자비심과 연민을 가지겠다고 결심합니다.투표 결과를 봐도 사람들 마음은 아주 조금씩밖에 변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바꾸는 일은 결코 내 몫의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척을 지거나 심지어 원수가 된 사이라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

단상 2025.06.04

고제와 공부과제

고제(苦諦)가 성스러운 진리(聖諦)인 것은 고통이 진리로 가는 길, 자유를 얻는 길에서 벗어났음을 알려주기 때문이라는 법문을 들었다.부족을 느끼는 것, 관계에서 마찰을 느끼는 것, 소유를 잃어버리는 것, 생로병사 등 모든 고통이 공부길로 가도록 싸인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감사할 일이라는 가르침이다.응무소주 이생기심과 같은 가르침이나 나무아미타불, 아버지-어머니-생명과 같은 염송이 다급할 땐 떠오르지 않는다고 한다. 죽을 때보다 다급한 때가 있을까?죽을 때, 몸이 내가 아니고 '나'란 나지도 죽지도 않는 것임을 보고 완전히 무심할 수 있다면 자유하리란 안목이 뚜렷해지도록 매일 연습해야 하리라.

에고 죽음, 자각몽, 불이문

1. 이고 선생을 비롯해서 내가 접한 거의 모든 스승들은 소위 인격을 잘 닦아서 꽤 괜찮은 인간이 된다는 생각이 어리석은 것임을 지적한다. 즉 에고로써 에고를 닦는다는 건 그냥 에고의 장난일 뿐이다. 2. 죽기 전에 한번 확실히 죽어보는 게 깨달음의 길이다. 혹은 이승 삶이 꿈인 줄 확실히 알고 이 꿈을 꿀 수 있다면 거의 견성이리라. 말하자면 자각몽과 같은 삶을 사는 것이다.3. 삶과 죽음마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면 거의 공부가 다 된 것이리라. 모든 음과 양의 짝이 다른 게 아님을 알면 불이문에 든 게 아닐까? 어째서 번뇌가 보리라고 하셨을까? 그걸 깨치라는 것이다. 심지어 깨달음이나 깨닫지 못한 것이나 같은 것이라 한다. 4. 불이문에 들어가기 위해 매일 조금이라도 법문을 듣..

죽음과 견성

다음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를 산 비베카난다 말씀입니다. "자유를 찾는다고? 세상에서는 찾을 수 없다. 책이나 절에서도 찾을 수 없다. 당신을 묶는 것은 오직 당신 자신뿐입니다. 마치 목에 밧줄이 묶인 것처럼 당신은 스스로를 질질 끌고 다닌다. 불평은 그만하고 밧줄을 버리시라."불이문을 설파하는 법문을 들으면 지금 당장 화끈하게 죽으라는 말과 같다. 17세기 초에 쓰여진 채근담도 이목구비가 바로 질곡이라 했다. 다른 말로 부자유의 원천이 견문각지(見聞覺知)라는 것이다.죽음을 완전히 잊고 살 수 없을 뿐더러 한번은 확실히 죽는다. 이 확실한 일을 위해 미리 연습을 해두는 건 상식적으로도 건전하다고 생각한다. 가상적으로라도 죽어보고 불이문 가르침대로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고 느껴보려 한다. 다만 마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