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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랑 블루와 수행 공부

'그랑 블루'는 호킨스 박사가 극찬하는 영화라 보면서 기대가 컸는데 기대가 커서인지 큰 감흥이 없었습니다. 요즘 박사님 책 '권능 대 위력(번역서 명 의식혁명)'을 재차 보고 있는데 어제 영화 부분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영화에서 다시 기억되는 것이, 주인공 마욜에게는 홀로 깊이 물 속에 가라앉는 일이 애인과의 일상생활보다 더 즐겁게 빠져드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호킨스 박사도 그 경지는 의식지수 700의 높은 경지라고 합니다. 수행의 전통에서 말하길 단 한 번의 깨달음 체험이라도 세상 복락을 다 합친 것보다 즐겁다고 합니다.그 기쁨 때문에 공부에 몰입하게 되고 결국 바이블이 얘기하는 내면의 천국을 누리게 된다고 봅니다. 그렇더라도 세간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고 참여하는 것이 대승인데 마욜이 애인을 대하는..

단상 2018.10.14

공부의 기본으로서 거경(居敬)

자아 성찰, 에고 포기, 과를 고치고 더 나아지기가 매일 공부의 요체입니다. 거기에 필수적인 것은 일정 시간 생각을 끊고 고요히 있는 것입니다. 이 공부 전제이자 바탕이 되는 일은 지극히 겸손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늘의 손길에 맡기는 것입니다. 내가 진보할 때 남을 고치려 하거나 세상을 바꾸려는 생각은 없어지는 반면 남에게 영향을 끼칠 기회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어제 아내와 운동 마치고 퇴근하는 아들과 셋이 저녁 대신 치맥을 했습니다. 우연히 구글링 얘기에 이르렀고 아내가 거기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나오냐고 합니다. 저는 조선시대 최고급 선비들이 어떻게 경(敬)을 실천했으며 그 영향이 현재까지 미쳐서 오늘날 BTS니 북핵협상이니 하는 성과가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내전과 분열 없는 나라 없고 망해..

단상 2018.10.11

사랑이란 존재상태임

호킨스 의식 지도에서 사랑의 장은 지수가 500이며 지성과 이성의 장을 넘어선 상태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에고가 거의 초극되어 하나됨(一者)의 체험을 앞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특정 입장을 가지지 않으며 불교 용어로 경계가 없어지면서 모든 생명을 자신의 일부로 인식하게 됩니다.대부분의 종교가 이러한 수준의 사랑을 얘기하기에 종교 자체는 500 이상으로 측정되지만 실제 이러한 상태에 도달한 사람은 인구의 4%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것은 동양종교도 마찬가지지만 서양종교의 대표인 기독교의 구성원들에게 사랑이란 육체적이거나 물질적인 욕망, 매력이나 참신함 등과 결합한 격정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요컨대 흔한 멜로물에서 사랑이 변해서 증오가 된다고 할 때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저급한 집착일..

단상 2018.10.08

신인합일 또는 천인합일

"영혼이 신 의식에 자신을 내맡기고 그와 일치되어 신 의식이 영혼의 일을 떠맡게 될 때 영혼은 단지 받아들일 뿐이며 활동하는 것은 신 의식이다. 이때 영혼에는 형상이나 표상이 없다. 형상이나 표상으로 표현되는 것은 시간과 공간에 그리고 피조물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113쪽)" 우리가 고요히 홀로 있는 시간을 낼 때, 즉 명상을 할 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인용했습니다. 전심법요가 말하는 '말이 끊어지고 마음이 사라지는 경지'를 추구하는 것도 같은 목적에 기여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해서 시간이 멈추는 것과 같은 체험을 할 때 그것이 바로 궁극의 실재 또는 신 의식에 대한 체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에크하르트를 읽다보면 '일자(Oneness)'와 다수를 얘기합니..

명상은 음적인 동시에 양적임

'신기독 수기중'은 홀로 고요히 있는다는 점에서는 음(陰)적이지만 오직 궁극의 실재를 지향하기 위해 전심전력한다는 점에서는 양(陽)적입니다. 다음에 인용하는 마이스터 에카르트를 보면 그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인용처는 바오로딸에서 나온 '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2002)'입니다."우리는 집착 없이 행하기를 배워야 한다. 그러나 훈련되지 않은 사람이 어떤 행위나 육신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상태에 이르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것은 엄청난 노력이 요구된다. 신은 훈련된 사람에게 언제나 현존하며 명백히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데 이를 위해서 특히 두 가지가 요구된다.첫째, 자신 안에 집중하여 마음이 외부 사물의 표상에서 벗어나 있고 외부 사물은 그에게 외계의 것으로 여겨져서 그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관련맺거..

신을 만나는 길

오늘의 묵상거리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에게서 가져옵니다. "인간이 신 안에 머물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우선 자기 자신과 모든 것을 버리고 감각이 파악할 수 있는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시간과 영원 안에 존재하는 어떤 피조물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눈을 감고 고요히 침묵 속에 있는 시간을 내는 것은 바로 이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교와 불교가 신을 만나는 우수한 방편을 실천했다고 저는 봅니다. 왜냐하면 신을 인간처럼 그려놓고 거기다가 '하느님'이란 이름을 붙이지 않기 때문입니다.생각을 끊는 노력, 모든 개념에서 벗어나는 노력은 유교의 수기중(守其中)과 불교의 지관문이 추구하는 것이기도 한데 바로 신을 만나고 신의 뜻대로 살 수 있는 출발입니다. 끝없이 말로 가르치고 지옥을 ..

논어 학이편

아시는 대로 학이편은 "學而時習之 不亦悅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로 시작합니다. 이것을 제 언어로 바꾸어봅니다. "배워서 습관이 될 때까지 노력하는 게 기쁨이 되는 것은 그것이 존재의 근원에 맞닿은 공부이기 때문입니다.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는 이유는, 이 공부가 근본에 이르는 공부이며 그가 내 뜻을 이해하기 때문이고, 그런 벗이 있다는 것은 내가 이 공부를 하고 있는 증거이기에 즐거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공부를 하다 보면 정(情, 에고)으로 사는 이들에게 모진 대우를 받을 수도 있으나 그로 인해 노여워하지 않는 것은 지향하는 목표가 향상일로한 끝에 군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모진 대우를 철저히 받아들임으로써 내 에고가 옅어지고 나는 향상하는 혜택을 받습니다."

단상 2018.09.30

기독교의 극복과 성리학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하면 상투적인 것 또는 통속적인 것이 되며 누구나 자기식으로 다 안다고 생각하여 제한적인 것이 되어버리고 그 힘을 잃어버립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소위 '하나님'이죠! 그래서 명상에도 이름을 붙이지 말자고 하는 것입니다. 조선 선비로서 경전을 제대로 실천한 사람은 누구나 명상을 했지만 거기에서 불교적 냄새를 찾을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라고 봅니다. 요컨대 혼자 있을 때 근신하는 '신기독'과 희로애락이 나기 전 시공이 끊어진 자리를 지키는 '수기중'은 성리학적 실천의 핵심이기에 중(中)이 바로 '천하지대본'이 된 것입니다. 성리학은 미신과 마구 영합하고 통치 이데올로기로 전락한 불교 극복 노력에 다름 아닙니다. 그와 같은 당나라 말기 지성의 노력은 고려말 이 땅에서 그대로..

단상 2018.09.29

왜 보살이 되어야 하는지

복을 구한다고 하면 구할 게 없는데 무엇을 구하냐고 반박할 수 있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가르침에 의하면 중(中)이나 공(空), 또는 성(性)의 자리는 원만구족하여 이미 모든 것이 있는 것으로 믿어집니다. 기독교나 힌두교 영성에서 말하는 신의 자리로 봐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선불교에서도 말이 끊어진 그 자리를 찾으면 더 이상 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일체를 부정했고 신 의식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에서 더 이상 찾을 게 없습니다. 바로 지복 상태임을 알게 됩니다. 호킨스 박사가 얘기하는 의식지수 600 이상의 상태인데 그때 깨달은 자는 이승과 저승에 대한 차별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이승에 있는 이유는 주변에서 도움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애덕의 요구에 따라 세상이 요청하는 일을 하게 될 것..

복을 구하는 공부

결국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모두가 복을 구하는데 왜 잘 안되는 것이며 명료하고 간단한 길은 무엇인가 하는 겁니다. 모든 철학과 종교가 나름대로 답을 제시하지만 왜 잘 안될까요? 저 자신도 많이 엇나가고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는 것을 환갑이 될 무렵 크게 넘어지고 깨달았습니다. 그 답은 홀로 있을 때 근신하고 진실하지 못했고 참마음(中)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참마음을 지켜 거기서 지시하는 대로만 살면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공부하고 그것을 몸에 익혀야 합니다. 그 가운데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 생각을 끊고 침묵 속에 머무는 시간을 내는 것입니다. 이 일이 몸에 밸 때 신 의식(또는 존재의 근원 또는 부동의 동자)에 일치하게 되며 빈 상태에서 무엇이든 복된 것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