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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선언과 공부의 요점

미디어란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어 외양에 치중하여 수많은 여행 프로그램을 방영합니다. 아름다운 곳, 재미있는 곳, 유익한 곳, 특별히 맛있는 곳을 계속 보여주지요!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정신의 자유를 얻는 데 도움을 줄지 몰라도 결국 상업주의에 매몰되지 싶습니다. '그리스도의 편지'는 보이지 않는 영적 여행을 다룹니다. 저는 가장 비천한 메신저에 불과하지만 참 좋은 텍스트 '편지'를 만나 함께한다는 목적에서 이곳에 꾸준히 글을 올리는 것입니다. 어제는 규칙 1번 "우선 10분부터 시작해서 매일 명상을 하여 만족할 만큼의 시간까지 늘려가겠다."는 바에 따라 10분을 늘려 타이머를 40분에 맞추고 명상을 했는데 진짜 눈 깜짝하는 것처럼 지나가더군요. 명상이 대개는 만족스럽지 않고 헤매다 끝내는 경우가 많은..

진정한 이상, 최고의 목표

너희 물질세계 장막 너머 놓여 있는 것을 보지 못한다면 너희는 종교적이라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영적 의식은 지니지 못한 것이다. 만유에 저마다 존재를 부여하는, 만유의 배후와 만유의 내부에 있는 를 이해하고 체험하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이상이요 진정한 열망이요 최고의 목표다. 너희는 이 실재를 신이든 알라든 야훼든 무한자든 지성이든 신성한 마음이든 신 의식이든 도(道)든 그 무엇으로 불러도 좋다. 이 모든 이름들이 너희 , 즉 을 뜻한다. 이보다 더 높은 열망을 품을 수는 없다. 모든 개체적 존재를 있게 하고 돌보아 존속하게 하는, 만유의 배후와 내부에 있는 를 이해하고 체험하는 것 말이다. (그리스도의 편지, 231쪽) -- 기본적으로 존재의 근원 또는 창조의 기원은 말로 형언할 수 없다는 것을 최고의..

종교 벗어나기

종교를 그저 사회적 필요 때문에, 예를 들면 결혼식, 장례식을 위해서 또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필요해서 가진다는 분명한 의식이 있다면 종교를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종교 없이 살다가 결정적 회두를 하고 의식이 향상하면서 종교를 택하는 경우도 분명 있다고 하니 이런 이유도 괜찮지 싶습니다. 또 제 모친처럼 절망적 상황에서 종교쪽의 도움으로 그것을 이겨낸 경우도 종교를 버리라고 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그저 맹목적으로, 또는 생각하고 따지기 싫어서, 의심하고 궁구하기 싫어서 습관적으로 조직된 종교에 가담하는 것은 안 좋은 경우입니다. 신과 나눈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종교를 벗어나서 사고할 것을 권합니다. 어떤 종교든 자기들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분리와 갈등을 낳고 세상에 불화를 가져올 가..

왜 극기복례인가?

우리가 살면서 오감을 기초로 얻는 사유로부터 통속성과 세상 즐거움 이외에는 없다는, 즉 보이는 게 전부라는 신화를 받아들인 결과가 지금 세상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통하면 된다는 의미의 통속성을 삶의 원리로 받아들이면 적자생존의 사회진화론을 실천하게 되고 희소성 원리 위에 세워진 경제성 원리에 따라 살게 되고 남보다 나아야 한다는 수월성 원리(사실상 우리 교육의 바탕이죠!)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하여 어떻게든 1등을 하여 잠시 세상에서 통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투철한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입증한 인간들이 박근혜와 양승태라고 봅니다. 이들 사회진화론, 경제논리, 수월성 원리 위에 세워진 세상을 바꾸려면 그것들이 사회운영에 꼭 필요하더라도 반드시 우리 전통의 극기복례 원리 위에 서 있어야 한..

단상 2019.05.08

기독교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

초등학교 5학년 이후 청소년기부터 결혼 후 상당한 기간 동안 제 의식을 지배했던 것은 기독교였습니다. 기독교와 결별하게 된 계기는 닐 도널드 월시의 '신과 나눈 이야기'를 만난 데 있습니다. 월시의 경우는 저와 같은 로마 가톨릭이었는데 그가 겪은 교회에 대한 체험이 참으로 공감이 갔습니다. 그 이후 호킨스 박사 저술에서 더 확신을 얻었고, 최근에는 '그리스도의 편지'에서 더 분명한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일단 다음 구절을 묵상해보겠습니다. "너희 종교들은 처벌하는 신이라는 관념을 정당화하고자, 신이 화를 낼 만한 뭔가를, 모범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조차 어느 정도는 구원받아야 할 뭔가를 만들어내야 했다. 자신이 저지른 일 때문에 구원받을 필요가 없다면 자신의 타고난 불완전함 때문에라도 구원받아야 하도록.....

무심(無心)과 힘 빼기

대부분의 무예와 스포츠에서 기술을 최대한 습득한 이후 본 경기에서 감독이나 코치들이 힘을 빼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 있을 것입니다. 어떤 목표에 집착하면 목표 달성에 거의 실패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나 직감으로나 알고 있습니다. 마음 수련 또는 영성 수련에 있어서도 목표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별히 깨닫겠다는 목표, 신을 만나겠다는 목표 등을 버리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지금 이미 깨달아 있다는 것, 또는 지금 이미 신이 우리에게 임재하신다는 것을 스승들은 강조합니다. 요컨대 아무런 목표도 의식하지 않는 것인데 그렇다면 우리의 진정한 목표는 어디로 가는가요? 도대체 왜 수행을 하는 건가요? 그렇게 마음의 달인이 되어 할 일은 유교에서는 평천하요 불교에서는 보살도이며 그리스도교에서..

도덕경 73장을 숙고함

도덕경 73장은 "하늘의 그물이 크고 넓어서 엉성하지만 놓치는 것이 없다(天網恢恢 疎而不失)"는 게 핵심이지만 앞뒤를 제대로 읽어보니 전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까지는 징벌하는 하늘(서양의 경우 하느님)을 전제했지만 제 공부가 진전하면서 징벌하는 하느님은 없다는 것을 이제 압니다. 그래서 자세히 읽으니 73장은 하늘의 궁극적 진리(天之道)에 관한 설명입니다. 즉 위 인용구 바로 앞에 하늘이 "넉넉하면서 잘 꾀한다(繟然而善謀)"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요즈음 첨단 과학과 영성이 상정하는 바와 같이 하늘을 궁극의 의식으로 보아야 하고 그렇게 보면 인간 의식을 포함하는 궁극의 의식(무극 또는 태극) 안에서 숨길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풀고 싶습니다. 제가..

단상 2019.03.31

충효(忠孝)와 지어지선

어제는 차량 점검 때문에 아내와 아들을 출근시키고 정비소로 갔습니다. 이야기 중에 제가 애들이나 조카들에게 기회만 되면 일관되게 얘기하는 충효에 대해 반복했습니다. 가족과 대화할 때는 맥락이 딱 맞는 기회가 올 때 교훈적인 얘기를 조금씩 하는 게 긍정적인 세뇌의 기회입니다. 내용인즉 '자신의 존재 상태를 최적, 최상으로 가져가는 게 효도요 충성이며 신에 대한 찬미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신 의식을 품부받았고 따라서 사고에 의한 창의력을 가지고 있으니 공부를 통해 무엇이 최적, 최선의 존재상태인지는 스스로 연구하고 실천하는 게 마땅합니다. 게다가 부모된 자는 삶으로 그 지침을 시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종교를 포함한 교육기관에서 배우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 세상 마칠 때까지 몸과 사회적 존재상태를 ..

단상 2019.03.29

맬웨어와 명상

지난 토요일 부부동반 친목회에서 이야기 나누다가 외국에서 쓸 수 있는 내비게이션 앱을 다운받는다고 두어 차례 시도했습니다(나중에 알고보니 구글맵만 있으면 된답니다). 그런데 착각인지 실수인지 엉뚱한 앱을 다운받은 것 같습니다. 가끔 게임하는 소리도 들리고 보험 세일 장면과 광고화면이 폰만 열면 뜹니다. 서비스 센터에 전화해서 이리저리 안내받아도 안되어 센터로 가야할 상황이었습니다. 어제 구글 검색창에 맬웨어를 쳤더니 최근 다운한 앱을 찾아서 차례로 지우랍니다. 사실은 그것을 파악 못해서 5일을 끌었던 것인데 침착하게 의심가는 놈 하나를 지웠더니 폰이 깨끗해졌습니다. 이 체험이 마침 읽는 실용 명상의 핵심 하나를 일러주길래 길게 써봅니다. 마하리쉬 님은 명상이 진척되면 생각을 완전히 통제하게 된다고 합니다..

단상 2019.03.22

존재상태로서의 하느님 나라

"하느님 나라는 온전히 하느님('아버지')의 것이 된 마음과 가슴의 어떤 상태입니다. 이런 상태에 있게 되면 아버지가 여러분 몸의 수뇌(head)가 되어서 여러분의 모든 행동과 삶의 모든 것을 지휘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자아를 비우는 것, 자아의 욕망, 적의, 화, 질투, 탐욕, 앙심 등을 완전히 비워서 여러분 마음과 가슴 속에 오로지 하느님만이 남아 주재하실 수 있게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하느님이 주재하는 존재 상태로 들어갑니다. 그것은 너무 아름답고 거룩하지요. 그것은 사랑이고 자비로움이며 자신을 아끼는 것과 같이 다른 이들을 아끼는 것이며 다른 이들을 정확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심판하지 않는 것이며 그들 또한 아버지 보살핌 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