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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과 성성(聖性)의 추구

일부러 을의 삶을 골라 살 필요는 없지만 세상 구조상, 그리고 각자 카르마에 따라 을의 체험을 피할 수 없습니다. 피할 수 없는 을의 삶이라면 잘 인욕(또는 인내)하는 게 수행의 길입니다. 한편 교구의 주교보다 종지기가 더 성인이 되기 좋은 자리라는 말도 전해집니다. 직장에서 한번 혼나면 최소 48시간 의기소침해지는데 그때 오히려 더 철저히 공부할 자세가 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삶은 카르마 상의 빚을 갚는 일이기도 합니다. 제 경우 그 가운데 가장 큰 과제는 나와 남을 판단하지 않음으로써 자유케 되는 일입니다. 나와 남을 판단하지 않는다 함은 그와 나의 수많은 과오를 경멸심 없이, 이원적 판단을 하지 않고 보는 것입니다. 매사 현재 상태의 완벽함을 보고 따라서 아무도 용서하고 말 무엇이 없다는 것을 ..

단상 2019.07.31

의식의 정화방법

355쪽부터 380쪽까지는 어떻게 의식을 정화시킬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그 서론이라 할 수 있는 우주의식과 신의식의 차이점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되는데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지만 제 경우 동양 영성에서 무극과 태극, 그리고 음양의 작동 원리에 해당한다고 느꼈습니다. 실천적으로 보다 중요한 말씀은 "창조의 본질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우주의식의 본질과 품성이 찬란히 빛나는 환희와 충만과 행복임을 이해하고 그러한 영광스러운 초월적 존재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 영혼의 가장 깊은 열망"(358쪽)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이 열망이 깊고 큰 것이기에 세상에서 보거나 배운 그 무엇에도 우리는 만족을 못하며 마침내 우리를 존재하게 한 신 의식에 접속하기 위해 명상을 하고 명상을 통해서 '신성한 평..

중을 잡아라(允執厥中)

제가 경전을 인용해서 풀면 꼭 어렵다고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어쩌면 당연합니다. 지배와 통제를 통해서 독점적으로 권세를 누린 자들이 어렵게 느껴지도록 해왔을 뿐 아니라 거짓과 왜곡을 곳곳에 심어놓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가르침도 예수께서는 가장 당대인들이 알기 쉽게 말하셨고 수시로 간략한 요약 및 해석을 덧붙이셨지만 후대인들이 교묘한 장난을 쳐서 복잡하게 만든 측면이 농후합니다. 대표적으로 중용에서 '중'이 천하지대본이라 했으면 그것을 쉽게 풀고 실천방법을 전수했어야지 이것을 바꾸어서 대중을 향해 '농자 천하지대본'으로 바꿔 써먹습니다. 농업사회에서 '농'이라 하면 바로 생산력이고 생산력이 세상의 근본이라 풀면 뭐가 떠오릅니까? 그것이 다름 아닌 마르크스주의입니다. 마르크스주의는 바로 유물주의고 어쩌면..

단상 2019.07.14

그리스도교 신비가

'그리스도교 신비주의' 번역을 마쳤습니다. 저자가 '그리스도의 신비체'를 기독교에만 해당하는 것으로 보기에 거부감이 있었지만 일단 객관적으로 들여다 본다는 기분으로 읽었습니다. 메시지를 조금 소개해보면 쉽게 얘기해서 보통의 그리스도인은 교회 잘 출석해서 예식에 참여하고 기도를 바치는 사람인 반면, 그리스도교 신비가라면 관조의 생활(contemplation)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비그리스도교 문화에서 이 말의 어원에 점을 친다는 뜻이 있었으나 기독교에서 쓰이면서 그 뜻이 배제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주역이 떠올랐습니다. 역경의 원래 취지는 생각도 없고 행위함도 없이(無思也 無爲也) 고요한(寂然不動) 신의 경지에 맞춰 살고자 하는 것인데 오히려 점술로 이해하는 속인이 많은 ..

단상 2019.07.13

신애, 윤집궐중, 지관

그제 명상시간 이후 최대 묵상거리는 '신 의식'의 화현이 되자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신애(神爱)의 다른 표현이라고 봅니다. 이것은 동시에 바오로가 거론한 쉬지 않고 기도하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중용 또는 중도를 잡기 위한 선행조건처럼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중(中)을 잡는다(允執厥中) 할 때 중에서 벗어나면 과(過)하거나 못 미치게(不及) 되는데 따라서 희로애락이 발하기 전의 중에 머무는 것이 바로 신 의식에 일치한 상태라고 보는 것입니다. 어쨌든 저는 종교와 통속을 같은 꽈로 보며 기독교가 '모든 경전의 정신이 신애와 인인애'라 하신 예수 말씀을 제대로 실천하는 법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신애의 길은 대승불교에서는 지관이요 기독교에서는 렉티오 디비나와 쉼 없는 기도를 통해 성령..

단상 2019.07.09

첨단 영성으로서의 '편지'

세포는 세포막을 통해서 오직 선별된 영양소만을 환경으로부터 받아들인다. 세포는 적합한 영양소만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잘 활용한 후에는 투과성 있는 세포막을 통해서 그 찌꺼기를 내보내어 제거한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순전히 물리적인 세포막이 어떻게 자신의 건강을 향상시킬 적절한 영양소를 식별하여 선택할 수 있는지 그리고 불필요한 독성물질에 대한 식별력을 제대로 발휘하여 그것을 제거할 수 있는지 너희는 자문해봐야 한다. 이 모든 작용 속에 고도의 목적성이 보이지 않는가? 이 목적성이 우연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라고 너희는 믿을 수 있는가? (287쪽) -- 위 문구의 앞뒤에서 편지는 우연히 화학작용을 통해 생명을 얻은 세포가 자가 증식을 해서 진화했다고 하는 과학과 하느님이 화학반응의 조합을 일으켜 ..

인간적 고독에서 신적 고독으로의 비상

긍정적 사고방식에 대한 가르침은 한정된 범위 내에서는 사실이지만 영적으로 진화해가는 구도자에게는 그런 정도의 의식 변화로는 영적인 메마름이 해소되지 않아서 자꾸 뭔가를 더 갈망하게 만든다. 영혼이 갈망하는 그 '무언가 더'는 과의 진정한 만남과 재합일이다... 우주적 존재의 본성을 깨닫고 그것과 진정한 만남을 이루는 일에 주의를 돌리면 너희는 자신이 더 이상 혼자가 아님을 (우주를 지탱하는 실재로부터 뒷받침받고 있는 자신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가 '그것과 진정한 만남을 이룬다'고 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러저러한 은혜를 간구하는 기도는 너희 과 진정한 만남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너희 존재의 근원과 진정으로 만난다는 것은 (1) 너희가 의식으로부터 거친 인간적 에고 욕구를 충분..

자유, 심진여와 심생멸

어제는 고전음악에 대한 책을 읽다가 '서번트(servant)'가 '발레(valet)'보다 아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대략 18세기 음악가들은 궁정에 채용되지 않으면 생계가 매우 어려워지지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들의 출신이 대개 '서번트'였기 때문이라 합니다. 모차르트는 여기에 반기를 들고 최초로 프리랜서를 선언한 음악가라 합니다. 각설하고 저쯤에서 자유라는 말이 동아시아에서 얼마나 영성 깊은 말인가 하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자유란 영어로 하면 'from self'죠. 밖의 것, 또는 밖에서 주입된 모든 것을 부인하고 내면의 것만 따라서 산다면 비로소 자유롭다 하겠습니다. 다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self'와 'Self'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1~2세기에 정리된 대승기신론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단상 2019.06.26

신의 속성과 다음 차원의 모습

너희는 너희가 하느님이라 부르고 내가 우주적 존재라고 일컫는 에는 많은 종교들이 덧붙여놓은 인간적 속성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온전하고 분명하게 이해해야 한다. 예컨대 분노와 위협, 처벌 등 인간적 속성은 오직 인간의 상황에만 어울리는 것이다... 죽음은 존재의 한정된 차원으로부터 더 밝고 더 강력한 차원으로 넘어가는 행복한 여행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너희가 영적으로 어느 정도 정화되어 육신의 껍질을 벗어날 때가 되면 너희는 이곳을 떠나서 육체적 제약에서 해방되어 사랑과 아름다움과 경이로운 존재감을 누리는 세계로 진입할 것이다. (274쪽) -- 저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어머니 따라 그리스도교에 입문했습니다. 그때부터 무의식적으로 입력된 하느님은 인간과 비슷한 것이었고 게다가 마지막 날에 단호한 심판으로..

신적 독서와 보살 되기

요새 독서는 Carl McColman이란 미국인의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와 Neale D. Walsch의 '신과 나눈 이야기'로 하고 있습니다. 새로 배운 것은 그리스도교 전통적 수행법 가운데 신적 독서(Lectio Divina)가 초기 수도원에서 확립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출처를 신에게 돌릴 수 있는 책을 읽고 감도를 느끼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 취지로 짐작되는 것은 수도자가 되기 전에 습득한 생각, 개념, 이념 등은 에고 또는 소아에 근거한 것들이므로 신적인 생각으로 채우면 우리 삶이 거룩하게 된다는 믿음에서 나왔으리란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신나이'에서 이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될만한 말씀을 만났기에 인용합니다. "지금 네 정신은 낡은 사고로 가득차 있다. 낡았을 뿐 아니라 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