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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신비주의' 번역 완료

저 책을 읽고 평소 제 생각이 더 강해졌습니다. 물론 제 생각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말씀드리면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두 계명, 즉 신애와 인인애(이웃 사랑)의 실천방법을 잘 모릅니다. 제가 보고 겪은 바로는 인인애로써 신애를 하는 것으로 간주하거나 교회 잘 출석하고 말 잘 듣는 것으로 신애를 실천한다는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교정하려면 2천년에 걸친 그리스도교 신비주의를 학습해야 한다고 보는 겁니다. 신비적 실천이라 함은 먼저 신애에서 만렙까지 가려고 치열하게 노력하는 가운데 세상이 요청하는 인인애를 실천하자는 것입니다. 이 노선은 상구보리가 하화중생에 우선한다고 보는 불교적 방법과 화(和)를 실천하기 위해 정좌해서 허령지각과 먼저 친해져야 한다(中의 실천)는 유교적 방법과 실천적으로 동..

단상 2019.09.03

천작이 향상하는 즐거움

며칠 전 접한 파라마한사 요가난다 말씀이 인상 깊었습니다. 인용해 봅니다. "당신이 불완전성에서 벗어나고자 죽음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죽은 뒤에도 당신은 전과 다름이 없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저 몸만 벗었을 뿐이다... 그저 죽음으로써 천사가 되지 않는다... 이제까지 무엇이 되었든 이 다음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환생한다 하여도 똑같은 상태로 날 것이다. 이것을 바꾸려면 노력해야 한다. 세상은 그 일을 하기 위해 존재한다." 나에 대한 부모의 기대와 소망, 자식에 대한 내 기대와 소망을 숙고해 봅니다. 아마도 그것은 존귀한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가난다 님은 그것을 천사로 표현했다고 봅니다. 존귀함의 드러남이 옛날엔 귀족이었다면 요즘은 고관이나 부자쯤 되겠지요! 그것을 위해 ..

단상 2019.08.28

어떻게 살 것인가?

동아시아의 사상 또는 학문이란 결국 이곳에 살던 이들이 이승의 고통을 벗어나면서도 세상 경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해법을 추구한 과정이라고 봅니다. 그 과정에서 이곳에서 발흥한 것으로 추정되는 도교와 유교에 불교가 더해지면서 통합적인 답을 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 답을 쉽게 풀면 '규칙적으로 정좌하여 홀로 있는 시간을 가지고 거기서 자명하게 얻어지는 매 순간의 실천방안을 세상에 펼치자'쯤 되는데 이렇게 말하면 다 안다고 생각하는 반면 경전을 인용해서 풀면 어려워서 모르겠다고 하는 분이 계십니다. 제가 짧은 공부지만 나름대로 근거를 밝혀가며 쓰는 이유는 동아시아 지성인이 수천년간 실천한 것이 같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그 과정에서 단 한 분이라도 학우를 얻으면 그것이 우리 사회에 큰 기여가..

단상 2019.08.22

왜 신비주의인가?

'그리스도교 신비주의' 삼교를 마치고 마지막 부분이자 의미심장한 부분을 인용하여 나누고자 합니다. 이 부분에서 월시의 '고통 없이 고통받기'라는 말과 앤소니 드 멜로의 깨달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지나가 버리는 것'이라는 취지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신비주의는 궁극적으로 당신이 죽기 전에 천국에 드는 기술일 뿐이다. 아니 더 적합하게 말하면 천국이 당신 안에서 지금 드러나도록 하는 기술이다. 신비주의는 당신의 죄나 아픔과 고통 또는 상처를 없애주지 않는다. 또 당신이 사는 세상의 부조리, 또 영원의 이쪽에서 계속 살아낼 세상의 부조리를 없애 주지도 않지만 신비주의는 이 모든 것을 바꿔준다. 신비주의에서 당신은 삶이 당신의 길에 던지는 모든 것에 대해 신이 개입된(God-infused) 선택과 응답을 ..

단상 2019.08.16

교만의 치료약

오늘은 번역에 대한 얘기를 할까 합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님은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는 등의 방법으로 독일어의 수준을 크게 높이는 일도 했다 합니다. 똑같은 언어라도 의식 수준에 따라 의미와 용도가 다릅니다. 천 년 가까이 가장 많이 인용되는 신비 신학가의 한 분이시기에 당시 쓰이는 용어들이 마음에 안 들었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제가 사숙하는 호킨스 박사도 그런 편인데 그의 텍스트에는 'positionality'라는 말이 꽤 의미심장합니다. 몇 년을 숙고해도 가장 적당한 우리말 번역이 안 떠오르다가 최근에 가장 가깝다고 여겨지는 말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대단한 성취를 한 사람이라면 조어도 할 수 있겠지만 차선책으로 정한 게 '아집(我執)'입니다. 더 좋은 생각이 있으신 분께 조언을 구합니다..

격물치지와 중화(中和)

8~9세기를 살으신 이고 선생은 인척인 한유와 더불어 타락한 불교를 극복하기 위해 유교를 재해석한 분입니다. 특히 대학의 격물치지를 깨달음 이후의 일을 처리하는 원칙으로 보고 그 바탕에서 수신제가와 평천하를 실천할 때 비로소 대승이 성취된다고 본 것입니다. 즉 격물이란 일이 닥친다는 뜻이고 치지란 일이 닥칠 때 그 마음이 초탈하고 완전히 객관적이 되어 일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物至之時, 其心昭昭然明辨焉, 而不應於物者, 是致知也, 복성서 중편 2절-3, 제 블로그 참조)이라고 합니다. 제가 볼 때 이때야말로 에고를 벗어난 것이며 가장 공(公)적인 상태가 됩니다. 또한 이때는 전혀 숨김이 없어 완전히 투명하며 에고의 집착이 없기 때문에 그 어디에도 치우침이 없게 됩니다. 저는 이 경지가 바로 중용에서 말하는..

영적 독서와 명상

번역중인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에서 핵심 중 핵심이라 할 만한 구절을 공유코자 합니다.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영적 독서의 수행이라는 게 명상보다 유명하지 않지만 그것은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와 관련된 유일하고 매우 기초적인 영적 수행이다. 참으로 내 책에서 배우는 단 하나의 수행을 실천하려고 하신다면 그것이 영적 독서가 되기를 나는 바란다. 그리스도교 명상이나 관조적 기도를 하고 싶다면 영적 독서로 시작하시라. 영적 독서는 신께서 택하신 곳으로 당신을 이끄시도록 당신을 개방시킨다. 기도, 명상 및 묵상은 정확히 이 수행의 파생물들이기 때문에 신비적 삶에서 강력한 훈련이 된다. 침묵의 훈련으로서 명상과 묵상은 그리스도의 신비로 들어가는 당신 여정에서 최후까지 함께할 집처럼 작용한다. 반면 영적 독서는 그 ..

당신의 공부는 진보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언어는 거의가 이분법 내지 이원성을 가정하고 있습니다. 상대계라고도 하지요. 영적 삶에서의 공부란 육적 삶에서의 공부를 암암리에 전제합니다. 맹자에 따르면 세상 벼슬, 즉 인작(人爵)을 추구하는 공부가 있으면 천작(天爵)을 추구하는 공부가 있습니다. 맹자의 고자(告子) 상편에 따르면 천작이란 인의충신과 선(善)을 즐기되 지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동시에 지극한 선에 이를 때까지(止於至善) 공부하라는 대학의 뜻과도 통합니다. 제가 말하는 공부는 영적 공부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은 바로 우리 전통에서 천작을 구하는 공부라 생각합니다. 인작을 구하는 대표적인 노선이 제 경우는 예비고사였지만 요즈음은 수능이 될 것입니다. 수능에서는 시험치는 순간의 실력이 최대가 되도록 계속 연습을 거듭합니다. 공..

명상과 성성(聖性)의 추구

일부러 을의 삶을 골라 살 필요는 없지만 세상 구조상, 그리고 각자 카르마에 따라 을의 체험을 피할 수 없습니다. 피할 수 없는 을의 삶이라면 잘 인욕(또는 인내)하는 게 수행의 길입니다. 한편 교구의 주교보다 종지기가 더 성인이 되기 좋은 자리라는 말도 전해집니다. 직장에서 한번 혼나면 최소 48시간 의기소침해지는데 그때 오히려 더 철저히 공부할 자세가 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삶은 카르마 상의 빚을 갚는 일이기도 합니다. 제 경우 그 가운데 가장 큰 과제는 나와 남을 판단하지 않음으로써 자유케 되는 일입니다. 나와 남을 판단하지 않는다 함은 그와 나의 수많은 과오를 경멸심 없이, 이원적 판단을 하지 않고 보는 것입니다. 매사 현재 상태의 완벽함을 보고 따라서 아무도 용서하고 말 무엇이 없다는 것을 ..

단상 2019.07.31

의식의 정화방법

355쪽부터 380쪽까지는 어떻게 의식을 정화시킬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그 서론이라 할 수 있는 우주의식과 신의식의 차이점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되는데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지만 제 경우 동양 영성에서 무극과 태극, 그리고 음양의 작동 원리에 해당한다고 느꼈습니다. 실천적으로 보다 중요한 말씀은 "창조의 본질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우주의식의 본질과 품성이 찬란히 빛나는 환희와 충만과 행복임을 이해하고 그러한 영광스러운 초월적 존재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 영혼의 가장 깊은 열망"(358쪽)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이 열망이 깊고 큰 것이기에 세상에서 보거나 배운 그 무엇에도 우리는 만족을 못하며 마침내 우리를 존재하게 한 신 의식에 접속하기 위해 명상을 하고 명상을 통해서 '신성한 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