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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 조건과 효능

운 좋게 처음으로 낸 책이 명상을 주제로 하는 책입니다만 이 간단한 공부는 서양의 신비가들과 동아시아 선비들이 실천했던 수행의 중추 가운데 하나입니다. 거기에 독서만 보태면 누구나 수행 공부를 제대로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쪽에서는 주로 정좌 혹은 좌선이라고 하는데 그저 앉아 있는 것이 기본이고 '선'자까지 붙으면 바로 제사를 지내는 일이기도 합니다(한자 '선'의 어원이 하늘에 제사지낸다는 뜻입니다). 어제 오늘 명상이 잘 되었는데 제 경우 그 판단 기준은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간 것으로 느껴지나 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명상에서 초월 체험이나 신비 체험을 기대하지만 우리 존재에게 그 상태가 항구하게 이뤄지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비슷한 체험은 임사체험, 유체이탈..

단상 2020.03.23

이승을 잘 지나가기

이번 생, 즉 몸 살이의 목적을 깨달았다 하더라도 일상의 버거움을 느끼지 않는 분은 드물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셨는지 모릅니다. 그것이 성령으로 새로 난 상태인지 모르지만 신비체험 또는 신인합일 등 몸을 벗어난 체험을 하신 분들 얘기를 듣거나 읽어보면 세상에 다시 개입하기 싫은 느낌이 들거나 또는 이 세상과 다음 세상 간에 그 어떤 선호도 없어진다고 합니다. '곡기를 끊는' 경지도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봅니다. 결국 몸과 마음이 고달프지 않으면서 궁극의 만족과 기쁨, 그리고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잠재한 바람이지 싶은데 거기에 이르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실천하는 이를 찾아보기 드문 게 현실입니다. 숙명처럼 일터를 향하면서 떠오르는 상념들이 ..

단상 2020.03.21

공관복음과 자아포기

잘 아시겠지만 공관복음이라 함은 네 개의 복음 가운데 공통된 부분을 묶은 것입니다. 대개 마태오, 루가, 마르코 복음의 유사성에 비해서 요한복음은 조금 맥락이나 표현방법이 다릅니다(말할 필요도 없는 게 제 지식은 '얕게 넓은' 것을 지향하기에 '깊게 좁은' 것을 기대하시지 않으실 줄 압니다). 자주 거론하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훈화(또는 영적 강화)는 거의 마태오 16:24의 자아포기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에고 또는 소아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완전히 비울 때 신이 우리 존재를 지배하는 천국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완전히 생각이 끊어져 희로애락이 나오기 전 상태인 중을 얘기하는 중용이 바로 연상됩니다만 이 점은 동서 영성의 핵심이자 공통점이기도 하다고 봅니다. 마태오 16:24는, 마르코 8:..

단상 2020.03.18

일상이 모두 도량

함께 수행공부하는 분께 제 에고 분석을 부탁했더니 교사가 될 운명이라고 합니다. 제가 여러번 소개한 관음경 설화에 따르면 공부의 단계는 경전의 암기, 해석, 체험의 세 단계를 말합니다. 처녀로 화현한 관음과 결혼할 자격을 얻으려면 궁극의 가르침을 체험해야만 합니다. 지금 전력을 기울이는 일이 바로 이 일이기 때문에 이번 생에서 제대로 체험하게 되면 일부러 교사노릇 하려 하지 않아도 제 덕을 볼 사람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전생 이래, 특히 이번 생에 어리석음(치심) 때문에 지은 업장을 지우는 데만 시간이 부족할 지경입니다. 오직 근원(부처님 또는 그리스도)의 가피를 얻어 성취하기만을 빌고 있습니다. 소승을 쉽게 비판하지만 평생 봉쇄 수도원에서 도를 닦기만 해도 모든 의식은 통으로 하나이기 때문에 제대로 ..

단상 2020.03.16

기독교의 자연사

저를 포함해서 비유와 실재를 언제나 정확히 분별하는 데 사람들은 대체로 무능합니다. 그래서 스승들이 체험한 영적 실체에 대한 설명은 수도 없이 왜곡에 왜곡을 거칩니다. 며칠 전 거론한 '새로 남'에 대한 대화에서 니고데모는 당대 최고 지성의 반열에 있었지만 그리스도 말씀을 못 알아듣습니다. 이어서 6장에서 피와 살을 먹는다는 비유에서 제자들은 그리스도와 오래 생활했음에도 못 알아듣습니다. 심지어 오늘날 기독교의 일파인 가톨릭은 이 비유를 말 그대로 알아들으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가 사용한 '아버지'란 말도 무조건적 사랑이자 우주의 근원 에너지를 지칭하는 말임에도 사람들은 인격으로 알아듣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주워들은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그리스도의 말씀 자체의 진정한 의미만을 이해하고 그분이 실천한 대..

단상 2020.03.12

새로 태어난다는 것

그리스도께서 니고데모와 '새로 남'에 대해 나누신 대화를 찾았더니 요한복음에만 있더군요. 불가에서 '견성하셨나요?' 하는 질문처럼 '새로 나셨나요?' 하는 질문은 하기도 어렵고 알아보기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 공부그룹에 그 체험을 하신 것으로 믿어지는 분이 계셔서 아침에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약 50년의 구도 체험 속에서 새로 남을 구현하셨다고 하면서 제게도 그게 필요하지 않냐고 해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에 있는 대로 '새로 남'은 육체 차원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고 스승들에 따라 다양한 표현이 존재합니다. 제 일감으로는 에크하르트 님의 '영원한 탄생'이 있고 플로티누스라면 '일자 체험'이 될테고 인도의 성자라면 '비이원성 체험'이 될 것이라 봅니다. 중요한 것은 제 동학님 말대..

끝까지 파기

맹자를 복습하는데 뒤에서부터 하기로 했습니다. 대개 경전 읽기를 하다보면 앞에 너무 비중을 두게 되어 뒷부분이 마치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 착각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읽다가 그만둔 적도 많고요~ 며칠간 뇌리에 강렬하게 남는 대목은 진심 상편의 우물 파는 비유입니다. 우물을 아홉 길이나 팠더라도 물 나오기 전에 중단하면 애초에 포기한 것과 다름없지 않냐는 것입니다. 이 비유의 주어는 그냥 '행하는 자(有爲者)'로 되어 있는데 저는 행함의 목적어를 유교의 이상인 내성외왕(內聖外王) 가운데 내성으로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진심장 앞의 고자 상편에서 천작과 인작을 나누어 반드시 천작이 앞서야 한다고 하였고 고자 하편에선 의식주와 예를 비교하여 다시 본말을 따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조선시대 모든 사람..

단상 2020.03.02

참된 평안

함께 공부하는 분이 올려주신 묵상자료를 보고 전염병이 가져오는 혼란과 불안과 불쾌함이란 게 그 전에 이미 수면 아래 있던 것들이란 걸 느낍니다. 적의와 독기를 품은 의식들이 탐욕과 폭력을 통해서 세계 곳곳을 뒤덮고 있었다는 얘깁니다. 기록된 인간 역사의 약 93%가 전쟁 역사였고 나머지는 페스트 같은 전염병 역사였다 합니다. 제 몇십년 사회생활 경험상으로도 세상에 적응하고 거기서 안락을 구하려던 모든 노력이 그렇게 잘 통하지 않았다는 것을 압니다. 퇴직무렵엔 오히려 세상의 부패함 속에 깊이 동조해서 바닥에까지 들어갔습니다. 큰 실패를 겪지 않았다면 아직 그 속에서 일희일비 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이제 몸은 세상에 있더라도 매일 신 의식의 보호와 복락만을 구하며 삽니다. 세상에 있더라도 세상 것이 되지 ..

단상 2020.02.23

탐진치의 극복

탐진치는 몸을 가진 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미생물이나 병원균이 우리 몸에 있지만 면역력이 있는 한 문제되지 않는 원리와 비슷하지 싶습니다. 완전히 알아차리고 거기에 휘둘리지 않는 상태로 가는 게 수행공부입니다. 세상 사람 가운데 극소수만 이 공부에 공을 들이기 때문에 피차간에 수시로 마음을 다칩니다. 어제는 아내와 그럴 일이 있었지만 진심(嗔心)을 알아차리고 최단시간에 용하게도 인욕을 실천했습니다. 공부의 목표이자 이상은 에고의 대표이기도 한 탐진치를 없앰으로써 보살심(신 의식, 무조건적 사랑)이 내 존재를 지배하는 상태입니다. 거기에 이르면 타인에 대한 태도, 즉 대응방식이 달라집니다. 이미 사랑 자체인 신 의식이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명확히 파악하지 못했던 치심에 대해 적으려 합니다. 백..

단상 2020.02.22

생존 이상의 삶

병은 숨기지 말고 알려야 한다는 말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영화 기생충은 인류의 현재 병폐가 무엇인지 가감없이 보여줬고 세계 거의 모든 이들이, 아니 적어도 산업화와 세계화로 혜택과 피해를 누린 이들이 무릎을 칠 만큼 공감한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봉감독이 한 말 중에 인상깊은 것은 세계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한 것입니다. 6계단의 법칙은 수십억 인구라 하지만 6단계를 거치면 누구나 연결된다는 것인데 네트워크 이론에서 실험으로 입증한 바 있습니다. 제 생각엔 세계화로 피폐된 다중의 삶이나 코로나 바이러스 현상이나 우리의 답과 결단을 촉구하는 현상입니다. 지금대로 살래? 아니면 전면적인 변화를 택할래?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 두 현상은 거대 국가 수반들이나 세계적 석학이나 심지어 투자가들도..

단상 2020.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