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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어지선의 비결

저는 서양에 있어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훈화'가 우리의 대학, 중용만큼 중요한 수양서라고 생각합니다. 혹여 저와 함께 입문하시는 분께 도움이 될까 해서 8장까지 소개했는데 오늘은 제가 접한 두 가지 번역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두 번역이 각각의 장점이 있으니 비교하시고 느껴보시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앞에는 '영적 강화'라고 이름 붙인 이부현 님의 번역을, 뒤에는 강병욱 님의 '영적 지도'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맨 뒤에는 제가 펭귄 영문 판에서 번역한 것을 붙입니다. 내용은 1장과 5장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골랐습니다. 제가 보기에 '훈화'는, 최고선을 향하는(止於至善) 비결이 자아를 비우는 데 있고 자아를 비우는 만큼 선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1 "사람들이 순종 가운데 ..

성인과 대인 그리고 적자지심

앞으로 위대하고 거룩한 인간이 될 기회가 있을까? 누구에게나 내면 깊이 그런 욕망이 있다고 본다. 드러나게 국사를 맡아 위기를 헤쳐나간 분들만 그러한가? 현재 정부 여당 수장들은 내 세대 분들로서 학교로 치면 3~5년 선배뻘이다. 직장생활 하는 동안 은행업에 나름 큰 기여를 했다고 자부하지만 임종을 앞두고 돌아보니 도저히 석연치 않은 바가 있다. 하지만 에크하르트 훈화에서 답을 찾는다. 내면이 신적이면 밖엣일이 아무리 하찮게 보이더라도 그것은 신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 전통에도 대인이라 함은 갓난 아이 마음(赤子之心)을 가진 자를 일컫는다고 되어 있다. 결국 내면의 성화가 전부다. 왜냐하면 외적으로 위대해 보이더라도 내면이 도덕적으로 천한 자를 우리는 존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에 격몽요결을 읽..

단상 2020.04.13

사전 투표일 풍경

사전투표 풍경이 무척 평화로와 보이고 무엇보다 벚꽃과 개나리 등 봄의 생명력이 마음을 기쁘게 해줍니다. 동사무소 5층에서 일부러 계단을 내려오다 만난 서화를 올렸습니다. 달빛을 먹는다는 표현에 매혹되었죠! 새 직장 근무 40일만에 급여도 받고 무엇보다 처음에 못마땅해 하던 시공사 과장이 제 근무 태도에 불만이 없다고 했다기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모든 스트레스의 원인을 내 탐진치를 비롯한 에고에서 찾으라는 게 반구저기(反求諸己)의 가르침입니다. 지난 연말 이후 극기복례-멸정복성의 또 다른 교재로 에크하르트의 훈화(영적 강화)를 실천코자 노력중인데 우연인지 4월 들어 블로그 방문자도 일평균 90회가 넘고 있습니다. 이미 거론했지만 '훈화'는 그리스도의 첫째 계명인 신애(神爱)의 서(書)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단상 2020.04.11

수행과 집단 의식의 향상

아침에 만난 말씀이 우주의 욕망, 다른 말로 근원의 의도에 소아 또는 내 욕망을 일치시킬 때 모든 것이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라는 부분 우주가 전체 우주에서 나왔는데 그 전체 우주 자리에서 보기보다 나라는 소아 입장에서 보기 때문에 매사 뜻대로 안 된다는 것이죠! 우선 소아는 몸의 생존에 진력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습(習)이 되어 굳어진 것이 아집 내지 고집이 되면 우주의 뜻을 파악하기 어려워집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시공간의 자리(position)를 차지함으로써 우주의 관점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소크라테스는 다이몬의 소리를 듣는 경지에 이르러 아테네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언행을 계속하다 그들을 견딜 수 없게 만들어 죽임을 당합니다. 그리스도도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뜻이 당신의 ..

단상 2020.04.01

에크하르트 훈화와 대학-중용

동아시아의 형이상학은 인격신을 전제하지 않으면서 궁극의 실재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검색하다가 자금성 중화전에 건륭제가 쓴 '윤집궐중' 현판을 보았습니다. 김구 선생이 쓰신 같은 구절도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대학과 중용은 유교적 신인합일, 즉 천인합일의 교재입니다. 그래서 며칠 전 "홀로 고요히 앉아 있을 때 대면하는 허공과 같은 무엇이 바로 천인합일이라 할 때의 하늘이며 기독경의 '고요히 있으라 그리고 내가 신임을 알라' 할 때의 내재하는 신과 같기 때문에 서양 신비주의의 신인합일과 동아시아의 천인합일은 같은 목표를 가진다"는 취지의 글을 썼습니다. 중을 내면의 신으로 보고 '지천명'하고 그 말을 잘 들어(耳順) 하늘과 하나가 된 경지가 바로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걸리는 게 없는..

신인합일에 이르는 길

제가 초심자 중에 초심자지만 중용을 입버릇처럼 거론하고 에크하르트의 훈화를 함께 읽는 뜻은 동서 지성 가운데 신인합일을 실천하고 거기에 이르는 방법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술한 글이 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대략 5장까지 거론했는데 6장에서는 이 공부를 하는 자세를 세 가지 예로 강조합니다. 첫째는 목마른 사람처럼 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 다음엔 글쓰기 훈련이나 바이올린 연주처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내적으로 홀로 있기를 배워야" 하며 "본질적인 방식으로 힘차게 신을 자신 속으로 모시고 들어와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바꾸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들에서 풀려나 모든 것들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머물 수 있도록 신적 현재에 푹 잠겨들어야 한다. 사랑하는 신의 모습에..

둘째 가는 계명의 전제

에크하르트의 훈화(영적 강화)에 대해 두 번 쓰면서 기독교도들이 그리스도의 첫째 계명을 모르면서 둘째 계명에 몰입함으로써 길을 잘못 든다고 말했습니다. 제 생각엔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한다 할 때 몸이 내가 아님을 먼저 깨치지 못하여 길을 잘못 드는 것입니다. 에크하르트는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을 벗어나서(aus seinem Ich) 내 의지와 고집이 사라질 때 신이 우리에게 들어온다고 합니다. 즉 신으로서의 내가 신으로서 내 몸처럼 이웃을 볼 수 있을 때 올바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아를 벗어나지 못할 때의 사랑이란 모두 다수성의 세계에서 계산과 유치한 감정의 사랑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3장에서는 아집을, 4장에서는 사물에 대한 집착인 법집을 벗어나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리스도의 첫째 가는 계명과 정좌

제가 여러번 지적했듯이, 그리고 제 40년 가까운 기독교 생활에서 보건대 기독교도는 그 안에서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첫째 가는 계명을 지키는 방법을 모릅니다. 그래서 두번째 계명인 이웃 사랑으로 대봉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첫째 계명을 모르기 때문에 두번째를 실천하면서 어그러지는 경우가 다반사죠! 에크하르트의 영적 강화(저는 훈화를 선호합니다) 둘째 장을 보면서 저는 동아시아의 수행을 떠올립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가장 힘 있는, 거의 전능에 가까운 기도와 무엇보다도 가장 가치 있는 행위는 텅 비어 있는 마음(ledigem Gemut, vacant mood)에서 나온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펭귄판에서는 '텅 비어 있는 마음'을 '자유로운 마음(free mi..

신에 대한 사랑법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영적 강화(Die Reden der Unterweisung, 이부현 님 번역)를 처음엔 강병욱 님의 번역(영성 지도, 2009, Play Store, Play Book)으로 여러번 읽었는데 이부현 님 번역과 펭귄 북의 영역(The Talks of Instruction)으로도 읽었습니다. 위 번역문들에 간간히 나오는 독일어를 보니 좀더 정확히 읽으려면 독일어 원전을 읽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전공이 아닌 터라 이고 선생의 복성서는 현대 중국어의 도움을 받아 거의 10개월 동안 번역해서 블로그에 올려놓고 이곳에서도 수시로 소개했습니다. 복성서는 8~9세기 동아시아 최고수준의 의식에서 나왔다고 판단해서 그렇게 했는데 에크하르트 님의 위 책도 13~14세기 유럽 최고 지성에서 ..

신애(神愛)와 천인합일

제가 초등학생때 천주교 세례를 받았을 뿐 아니라 부친 따라 집안 제사에 모두 참석했습니다. 두 종교가 제사를 핵심으로 하고 있는데 형식에 불구하고 모두 하늘에 제사하는 것으로 보는 게 맞습니다. 이때 하늘은 물리적인 게 아님에도 가시 세계로 향하는 순간 신플라톤주의에서 말하는 다수성에 빠집니다. 달리 말하면 우상숭배에 빠집니다. 기독교의 실패나 유교의 실패나 오십보 백보라고 생각합니다. 홀로 고요히 앉아 있을 때 대면하는 허공과 같은 무엇이 바로 천인합일이라 할 때의 하늘이며 기독경에도 '고요히 있으라 그리고 내가 신임을 알라'고 해서 가시계의 신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 내면의 하늘에 전력투구하라는 게 중용이고 그리스도의 1계명입니다. 하근기를 위한 십계명이나 유교의 예에 관한 디테일 모두 거기에 사로..

단상 2020.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