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성서

4절-1 참나와 에고의 작용과 관계를 재론함

목운 2016. 4. 12. 10:09

“범인의 참나와 성인의 참나가 같습니까?” “걸왕 주왕의 참나는 요순의 참나와 같습니다. 그들이 참나를 보지 못한 이유는 욕망과 악을 좋아하여 어두워진 때문이지 참나의 탓이 아닙니다.” “악을 하는 것은 참나가 아닙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에고의 작용입니다. 에고에는 선악이 있지만 참나에는 악이 없습니다. (問曰. 凡人之性, 猶聖人之性. 故曰. 桀紂之性, 猶堯舜之性也. 其所以不覩其性者, 嗜欲好惡之所昏也, 非性之罪也. 曰. 爲不善者, 非性也. 曰. 非也. 乃情所爲也. 情有善有不善, 而性無不善焉.) 

 

맹자[告子上]께서 말씀하시길 ‘사람은 선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물은 낮은 데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 없다. 만약 물을 쳐서 튀어오르게 하면 사람의 이마 높이를 넘어가게 할 수 있고 물결을 막아서 거슬러 올라가게 하면 산 위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데 이것이 어찌 물의 본성 때문이겠는가?’ 억지로 끌어들이는 힘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참나는 모두 선하므로 그 악한 것은 모두 물의 예와 같습니다.” (孟子曰. 人無有不善, 水無有不下. 夫水搏而躍之, 可使過顙, 激而行之, 可使在山, 是豈水之性哉. 其所以導引之者然也. 人之性 皆善, 其不善亦猶是也.)

 

“요순에게 어찌 에고가 없습니까?” “성인은 지극히 온전합니다. 요순은 16명의 재상을 천거해서 썼지만 사욕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공공과 환도를 유배 보내고 우임금의 부친인 곤을 처형하고 삼묘를 토벌했지만 개인적 감정으로 한 게 아닙니다. 모두가 절도에 맞았을 뿐입니다. 그뿐 아니라 세상에 모범을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問曰. 堯舜豈不有情耶. 曰. 聖人至誠而已矣. 堯舜之擧十六相, 非喜矣. 流共工, 放驩兜, 殛鯀, 竄三苗, 非怒也. 中於節而已矣. 其所以皆中節, 設敎于天下故也.) 

 

주역에 말하길 ‘변화하는 도리를 안다는 것은 신명의 작용과 뜻을 안다는 것입니다.’고 했습니다. 중용에 말하길 ‘희로애락이 나타나기 전의 상태를 중이라 하고 드러나면 모두가 절도에 맞는 것을 화라 합니다. 중은 천하의 근본이며 화는 천하의 끝까지 통하는 원칙입니다. 중화가 이뤄지면 천지가 모두 제 자리를 찾고 만물이 생장합니다. (易曰. 知變化之道者, 其知神之所爲乎. 中庸曰.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致中和, 天下位焉, 萬物育焉.) 

 

주역[系辭上傳]에 이르길 ’덕행이 깊으니 천하만물의 마음에 통하고 날카로운 예지로써 지극히 어려운 일을 이루고 수양이 신령한 데 이르러 재주가 둔한 것 같지만 실제 움직임은 재빠르고 행하지 않는 것 같지만 목표를 달성하고 있습니다. 이를 일러 성인의 경지라고 합니다.” (易曰. 唯深也. 故能通天下之志. 唯幾也. 故能成天下之務. 唯神也. 故不疾而速, 不行而至, 聖人之謂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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