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요령과 요점

올바른 공부

목운 2022. 11. 26. 13:29

우리가 진여 또는 참나임을 아는 것이 깨달음이라는 것이 요즘 읽는 책의 내용입니다. 대승기신론이 진여심과 생멸문으로 나누어 말하는 깨달음의 전통은 어디에서나 같은 것 같습니다. 라마나 마하리쉬 님도 이 전통 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마하리쉬 님의 'self inquiry'를 진여 탐구로 번역하는 게 더 의미 파악에 도움이 된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위 책을 읽다보니 탐구마저도 달리 번역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문장을 보죠.

Ramana defines inquiry as holding the mind on the self, which means keeping your attention on the reflection of the self in a pure mind. [How to attain enlightenment]

즉 inquiry를 진여에 마음을 잡아두는 것, 즉 정화된 마음에서 진여의 비추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self inquiry는 앞글에서 다루었듯이 우리 정체가 참나 또는 의식임을 확고히 알아(즉 깨달음을 얻어) 언제나 진아인 의식에 머물러 살기 위해 의식적으로 진여에 머무는 것을 말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깨달은 자로서 그리스도가 이 두 차원의 삶을 사셨다는 다음 문장을 보면 우리도 깨달은 자가 되어 어떻게 살지 하는 것을 그분에게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Throughout the teachings of Jesus, one finds these two, apparently contradictory, attitudes intermingled: the attitude of the jnani, or knower (“I am the Light; I am above all that is manifest…”); and the attitude of the bhakta, or devotee (“Father, Father, why hast Thou forsaken me?”). He speaks now as the transcendent Unity and now as the imaged soul; they are the two voices of the illumined man, for he is both now one, now the other. [History of mysticism]

그리스도가 깨달은 자(jnani)로서 말씀하신 경우와 몸과 마음을 가진 자(imaged soul)로서 말씀하신 경우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 기독교 안에서 만나는 온갖 모순의 원인도 알 수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신성-인성 논의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동아시아에서 깨달은 자가 깨달은 후에 어떻게 사는냐에 대한 답으로 역시 물 긷고 나무한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깨달은 후에도 몸과 마음을 가진 자(즉 에고)로서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존재 상태가 오직 의식이고 의식만이 실체라는 것을 또렷이 아는 것 - 그것이 올바른 공부가 아닌가 합니다.

'공부의 요령과 요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깨어남과 깨달음  (0) 2022.11.28
요점 중의 요점  (0) 2022.11.27
마음의 의지처  (0) 2022.11.24
깨달음  (0) 2022.11.14
깨달음, 참나, 자유  (1) 2022.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