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고통 없이 고통 받기

목운 2022. 11. 19. 07:45

고1때 과제로 낸 독후감으로 우수상을 받았고 어쩌면 그것이 제 인문학적 성향을 결정지었는지도 모릅니다. 1차 대학시험 면접에서는 철학을 전공하겠다고 답했고 2차대학은 비록 상대였지만 전공으로 경제학을 택한 것도 나름 저런 성향에 기인한 것 같습니다.

요즈음 소명으로 삼는 모또가 탄허스님의 향상일로와 더블어 인문제세입니다. 인문학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소양이 국어와 외국어 실력이라는 것은 앞글에서 논했습니다. 인문학 공부에서 얻은 제 결론은 동서 최고 지성들이 탐구한 것은 궁극의 자유라는 것입니다.

20대에 몰입했던 프롬은 사회적 제약에서의 자유와 동시에 정신적 자유를 함께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나이 먹으면서 제가 보는 관점은 사회적 제약마저 허상인 동시에 인간 의식이 만들어내는 결과일 뿐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보면 자유를 위한 모든 노력은 의식에 집중되어야 할 것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거론하는, 몸을 가진 동안의 해방(지반묵티)과 몸을 벗은 후의 해방(비데하묵티)에 기원하는, 유가의 종심소욕불유구나 불가의 출세자유인 모두 완전한 깨달음을 통한 자유를 말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장자의 호접몽은 그 모든 논의를 한 컷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컨대 이목구비가 겪는 현실이 모두 꿈인줄 알고 그것을 바라보며 살면 깨달은 삶이고, 꿈에 완전히 빠져 '그저 바라보는' 의식이 따로 있다는 것을 모르면 중생 또는 범인(凡人)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꿈이 꿈인줄 알면 최악의 고통도 그저 지나가는 영상일 뿐임을 알게 되어 '고통 없이 고통받기'가 무슨 말인지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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