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영성,현대인

제1장 - 해결책

목운 2014. 8. 4. 07:51

해결책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위에 거론한 바와 같은 격차를 받아들이면 사회적-정치적으로 유치한 이데올로기뿐 아니라 부정적이고 이상주의적인 희망 섞인 생각을 버릴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어느 것도 해결책을 가져오지 못하고 그저 다음의 큰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후퇴해 있는 단지 시간상 소강상태일 뿐이다. '젊잖음'이란 200 이상의 사람들에게 정상적인 듯하지만 200 미만의 사람에게는 모욕이고 경멸할 만한 약점이며 따라서 효과적인 소통 수단이 아니다. 동족 상잔은 세속 부문에서뿐 아니라 종교 분야에서도 일어난다.


지혜, 수용, 그리고 자비에 의해서만 인내를 수반하는 이해력이 생기고 크게 차이나는 세계관과 가치관에 대한 실제적 포용을 가능케 한다. 공격과 모욕은 이렇게 갈등을 부르는 지배적 세계관, 사고방식과 현실에 대한 몰이해에서 초래된다. 


효과적인 소통을 저해하는 것은 전쟁, 협박, '재교육', 선전이나 재프로그래밍을 통한 '관용' 등으로 자기 관점을 따르도록 다른 사람의 관점을 바꾸려고 시도하는 데 있다. 소망 섞인 사고의 결점은 낮은 의식 수준의 소치인, 이해력을 막는 주된 장애를 알지 못하는 데 있다. 그것은 고급 양자 역학을 교육 수준이나 지성이 부족한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문화적 변화'로써 이상적 사회 목표를 추진하려는 당면 과제의 난점은 각 의식 수준이 '실체'에 대한, 또는 가장 중요한 것이나 가치 있는 것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떤 문화는 평화와 협력을 바람직한 목표로 보기보다는 취약성의 징조로 본다.


정치적, 종교적, 공공적 기구뿐 아니라 특정 인구군, 문화, 개인들 및 국가의 의식 수준을 이제는 즉각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그때에만 외교학이, 관련 외교적 대화에 의미 있는 기초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진실 대 거짓의 "외교학" 참조). 거기에서는 그 기초적 특성이 오직 이익욕인 에고의 본성을 감안하고 있다. 각 의식 수준은, 바람직하거나 이득이라고 생각하여 협상에 중요하다고 보는 것을 포함하여 자기만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평화'는 대중적 정치 표어지만 예를 들어 "돈이 평화보다 중요하다."(의식 지수 365; 부시의 2007년 연설)는 말처럼 사회-경제적, 정치적 세계에서 설득력이 있는 것이 실로 석유 자본이라고 언급된 적이 있다.


에고는 모든 지향, 목표와 행위의 주된 동기로서 이득에 집착한다. 영적으로 진화함에 따라서 이러한 것들은 오직 더 높은 선을 위해서만 포기된다. 설사 강한 지향과 헌신이 있어도 인간의 진보는 느리고 어렵다. 그리고 인간 진화는 요동하기 때문에(예를 들어 인류의 의식 수준은 최근에 207에서 204로 떨어짐) 공감적 이해를 위해서는 인내가 필수 조건이 된다.


인간 조건에 갈등과 격차가 태생적이라는 것(예, 카인 대 아벨)을 받아들이는 것은 역설적으로 죄책감에서 내적으로 해방되는 느낌을 가져온다. 인간 삶은 영적 진화를 위해 최대한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오감은 사회적-정치적-관념적 갈등뿐 아니라 개인적 갈등을 평화와 행복에 대한 장애로 간주한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영적 참나는 바로 그와 같은 세상에서 완전성을 보기도 한다.


인간 삶이 두려운 것이거나 실망스러운 것인지, 흥미진진하고 도전적인 것인지 하는 것은 영적 진화의 지렛대로서의 특징을 가지게 하는 하나의 선택지가 된다. '고차원의 길'을 택하는 것은 영적 참나가 에고(소아)에게 보내는 초대다. 하지만 인간의 내적 외적 갈등은 그로써 진화를 이루게 하는 유익한 재료로 똑같이 작용한다. 예를 들어 '적'이라는 인식이 없다면 도대체 용서할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에고에 대한 믿음과 약속은 결국 실망과 환멸을 가져오지만 역설적이게도 동기를 강하게 해줌으로써 영적 진화에 기여할 수 있다. 조사해보면 인간의 세속적 삶은 의식의 향상과 영적 실체의 탐구(그로써 존재 자체의 태생적 완전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모든 생명은 변모한다.)를 위한  최적의 환경이 된다(진실 척도 1,000). 인내와 끈기를 가지면 '모든 피조물의 본질인 신성'은 빛을 발하고 에고의 오류와 투사된 가치를 대체하게 된다.


앞의 진술 가운데 어떤 것은 처음엔 애매한 반면 다음 장 이후에 오는 정보의 목적은 전체 의미를 밝혀 명료하게 하려는 것이다. 의미의 파악은 맥락의 귀결이며 의식 자신이 궁극의 맥락을 제공하는 것인데 그 맥락에 의해서 희미한 듯하던 것이 자명해진다.


거짓과 에고 본능은 완력과 '인과'라는 가정에 의존하는 반면 진실은 무위의 권능을 반영한다. 권능은 거짓을 극복하는 게 아니라 맥락화의 결과인 깨달음에 의해서 거짓을 대체하는 것인데 맥락화에 의해서 '의미'는 패러다임의 확장에 힘입어서 더 큰 차원을 띠게 된다. 마치 빛이 어두움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대체하는 것처럼 작은 것은 큰 것으로 대체되어 큰 것 속으로 사라지기 때문에 실로 갈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에고(소아)는 더 큰 존재인 참나에 흡수되기 때문에 그것은 더 이상 저항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 갈등의 기원인 듯하던 불일치도 없다. [제1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