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정복성

3장 8

목운 2015. 3. 1. 19:19

"체험자"란 처리되는 자료의 성격과는 관계가 없는, 의식의 오감 경계면을 말합니다. 우리가 "나"라는 것으로 동일시하는 게 바로 이것입니다. 관찰해보면 소아는 비록 체험자를 자신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기능은 독자적인 게 아니며 자동적입니다. 체험자는 "그것"이지 "누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기능의 한가지입니다. 그것은 다기능 탐사장치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에고(소아)는 이 "체험자" 구실을 낙으로 삼으며 실로 거기에 집착합니다.
 주의하고 결단함으로써 체험자의 유혹적인 매력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체험자가 보여주는 여흥에 굴복하는 것은 습관일 뿐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아니며 소아가 자신과 동일시하는 활동의 하나일 뿐입니다. 마음은 정보를 지속적으로 차례차례 집어넣고 "진행중인 사항들"에 대해 집중하지 않으면 "멍해지고" 허무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밤에 우리는 잠 덕분에 다행스럽게도 체험자의 끊임없는 지껄임에서 벗어납니다. 즉 마음은 단지 세가지 가능성만을 생각하는데, (1) 체험 (2) 잠(망각) 또는 아마도 (3) 꿈이 있는 잠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이 잘 모르는 네번째 상태가 있는데 그것은 알아차림 자체로서 내용물이나 체험(또는 참여, 분석이나 기록)과 독립해 있습니다. 그 기본적인 특성은 애쓸 필요가 없고 평화롭다는 것이며 관상적 삶의 양식과 함께한다는 것입니다. 그것 덕분에 전통적으로 '삼매'라고 불리는 상태에 이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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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사물처럼 일단 특정한 사람과 관계없는 것이 되면 그 가치와 매력을 잃게 됩니다. 생각과 감정은 욕망에서 나오며 마음은 자기가 가치있다고 보는 것을 욕망합니다. 
 마음을 맑게 하려면, 거기에 신념을 부여하고 덧씌우고 투사하지 않을 때 그 무엇도 특별하거나 독자적인 "가치"나 "값"이 전혀 없다는 것을 주목하면 됩니다. 그러니 평가, 가치, 중요성 및 관심을 끊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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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하기"에 대한 관심을 끊거나 에고(소아)가 체험자 "경계" 및 그 처리 기능과 동일시를 하지 않으면서 개념적 사고를 그만둘 때 중대한 변모가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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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을 하면, 처리되고 있거나 체험하는 "무엇"에 실제로 관여하지 않으면서 의식의 성질을 하나의 과정으로 보아 집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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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해보면 영상과 언어 바로 밑에 추동력(즉 생각하고, 심적 활동을 하고, 마음이 빈 곳을 채우고자 무언가를 입력하려는 욕망)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을 하게 하는 추진력을 찾아낼 수 있는데 그것은 '독자적'인 게 아닙니다. 관찰해보면 생각을 하는 "나"라는 게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실 "나"는 좀처럼 개입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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