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정복성

3장 5

목운 2015. 2. 23. 08:55

통상 마음의 작용은 무언가를 "얻는" 지속적 노력의 모습을 띠는 반면 영적 깨달음은 전적으로 힘들이지 않고 수동적이며 저절로 이뤄지는 일입니다. 그것은 획득한다기보다 받는 일입니다. 비유해보면 소리가 그치면 침묵이 드러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노력이나 수고로써 얻을 수 없습니다. 마음의 작용에는 통제가 있지만 계시에는 통제가 전혀 없습니다. 통제할 게 없고 통제할 수단이 없는 곳에서 통제를 하려 해도 통제는 불가능합니다. 모습이 없는 것을 조작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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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음'이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알기 시작합니다. 또 마음이 생각과 믿음, 느낌과 의견 등을 가지게 됩니다. 마침내 우리는 우리의 모든 생각을 의식이라는 거대한 데이타베이스에서 빌려왔을 뿐이며 참으로 우리 것은 아니라는 통찰에 도달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유력한 사고 체계를 받아들이고 흡수하며 그것과 동일시합니다. 때가 되면 그것은 유행이 되는 새로운 생각으로 바뀝니다. 그런 식으로 일시적인 개념에 대해 가치를 두지 않게 되면 그 지배력은 사라집니다. 우리는 점차 마음으로부터의 자유는 물론 마음의 자유를 체험합니다. 마음은 원숙해져서 이제 기쁨의 새로운 원천을 찾습니다. 적합하게도 우리가 <의식 지도>를 따라 상승함에 따라 존재의 기쁨 자체가 무르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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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내용물하고만 동일시하면 소아의 체험은 한계를 가지는 게 당연합니다. 반대로 의식 자체와 동일시하면 우리의 실제 자아(참나)가 무한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제한된 자기 동일시를 극복하여 자아감각이 의식 자체와 같아지면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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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와 같은 마음은 정의상 실체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해한다면 즉각 사라져 그 본성이 자기가 만든 환상임을 알게 됩니다. 에고를 초월하는 마음이라는 모순 너머에서만이 '존재' 자체가 자명하며 그 <절대성> 안에서 빛을 발합니다. 그때 비로소 모든 언어가 쓸모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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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참된 당신은 에고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으십시오. 에고와의 동일시를 거부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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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을 성찰해보면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변하는 것은 그래서 자신을 환상과 동일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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