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되기

14장 2

목운 2014. 12. 16. 00:04

그의 '깨달음 3부작' 가운데 한권에서 제드 맥케나는 "영적 자기분해"라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장과 다음 장에서 그의 말을 직접 인용하겠습니다. 

 "자기분해는 심적, 육체적, 정서적 측면을 포괄하는 자아의 수준을 뜻하는 것이라고 해둡시다. 두 단어를 합치면 당신을 한번에 한조각씩 정화하는 불 속에 집어넣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쾌한 과정입니다. 기본적으로 선불교의 공안과 같은 것입니다. 당신이 참으로 해야 할 것은 진실을 적는 것입니다. 간단한 것 같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이 다입니다."  

 제드가 영적 자기분해에 대한 실제 과정을 말한 것을 잘 묘사한 것이 아더라는 학생과의 대화를 적은 1권에 있습니다.

 "자네가 진실이라고 아는 것 또는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그저 적고 진실이라고 생각해낼 때까지 계속 적는 것일세."

 "파이는 원지름에 대한 원둘레의 비율입니다."라고 아더가 말했습니다.

 "물론이지" 동의하네. "그처럼 더 논의할 여지가 없는 것으로 시작해서 그 진술이 놓여진 기초를 검사하기 시작하고 그걸 따라 가장 견고한 것, 참된 것, 즉 바닥에 이를 때까지 가보는 것이지."

 "파이는 원지름에 대한 원둘레의 비율이 아닙니까?" 그가 묻습니다.

 "그 물음은 원이 있다는 걸 전제하는 것이지."

 "원이 없습니까?"

 "아마도. 나는 모르네. 원이 있는가?"

 "글쎄요, 내가 원을 그리면..."

 "나? 자네는 언제 자네의 존재를 확인했는가? 그린다고? 자네는 이미 자네가 인식 능력과 그릴 능력을 가진 물질 존재임을 확인한 지점을 지났는가? 그렇다면 자리를 바꿔 앉아보세."

 아더는 생각에 잠기고 잠시 침묵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계속하라는 게 그렇게 하는 거라 생각했죠. 이거 굉장히 어려운데요.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디서 시작하는가는 문제가 아닐세. 자네는 마하리쉬의 물음인 '나는 누구인가' 또는 '나는 무엇인가?'에서 시작할 수도 있겠지, 그리고 그걸 가지고 작업을 할 수 있겠지. 뭔가 진실인 것을 그저 말하기 시작하는 거야. 쓰고 또 쓰는 거야. 명료하게 하고 지나친 것은 잘라내고 끝날 때까지 하는 거야."

 "그러면 그게 보통 얼마나 걸립니까?"

 "내 생각엔 2~3년 걸린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다 끝내면 당신은 다 한거야."

 "다 했다니요?"

 "끝난거지."

 "그럼 일기를 쓰는 것 같은 건가요?"

 "좋은 질문이야. 그렇지는 않아. 이건 개인적 깨달음이나 자아탐구가 아냐. 감정이나 통찰에 관한 것도 아니고 개인적이거나 영적인 진화에 관한 것도 아닐세. 자네가 확실히 아는 게 뭐냐는 거지. 자네가 진실이라고 확신하는 게 뭐냐는 거지. 이 과정을 통해서 자네는 진실을 가장한 거짓의 꺼풀을 하나하나 떼어내는 거라네. 그게 어제 쓴 것이라면 언제든 쓴 것으로 돌아가서 보면 거기서부터 자네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 깜짝 놀라게 될 걸세. 그건 실로 고통스럽고 심술궂은 과정이며 자기 몸을 절단하는 것과 비슷할 거야. 그것은 결코 낫지 않는 상처를 낳을 수도 있고 다시 세울 수 없는 다리를 태우는 일이기도 하고 그것을 하는 유일한 이유는 다시는 그것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라는 거야."

 잠시후 학생은 물었습니다. "그렇게 쓰는 이유가 뭔가요? 공안처럼 머리로 하면 안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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