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간성을 동시에 믿자는 걸 교리로 하지 말고 니케아 이전처럼 각 수준대로 믿게 내버려 두는 게 더 나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오늘날 생각대로 말해보면 그리스도나 우리나 신으로서 창조한 것을 인간으로서 체험하는 것이다. 다만 창조는 무한다양하게 드러나는 것이고 창조 이전(또는 빅뱅 이전) 일자(一者) 안에서 모두가 하나일 뿐이다.
일자와의 합일을 체험하고 그것을 철학으로 만든 사람이 플로티누스이며 그의 철학이 신플라토니즘인데 신비 영성은 모두 신플라토니즘과 대동소이하다는 게 내 공부의 결과다. 신유학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신비 영성의 공통점은 제사장의 중개를 거부하고 직접 신인합일을 추구한다는 것이며 그렇기에 민주주의의 씨앗으로 볼 수도 있는 것 같다. 개인이 지배적 강자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근거이자 제정분리를 가져올 토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신비 영성은 역사를 통해 미친 것으로 간주되거나 탄압받은 일이 많다. 중세 독일의 베귄은 여성들 중심 신비 신앙 그룹이었고 이들을 지키려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천주교에서 이단 심판을 받은 유일한 고위 성직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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