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신비주의와 그리스도인

목운 2020. 5. 13. 08:07

총선 전날 180석이 되는 근거를 적었는데 부울경 박빙 이상이라고 한 것만 빼고 대략 맞췄습니다. 기분 좋아 친구들 불러 호룡곡산 산행후 한 턱 냈습니다. 인구 분석과 여론조사의 심층을 들여다 보면 '과학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을 야만에 가까운 학계와 언론 풍토 때문에 결과에 대해 짐짓 놀라는 체하는 모습이 제겐 놀라울 뿐입니다!


친구들은 제 공부에 관심이 많아 몇 가지 물었는데 제 답은 페북 담벼락과 제 블로그에 이미 올린 바 있습니다. 그 가운데 신비주의 영성을 궁금해 했는데 저는 영성을 신비화하는 게 실패의 시작이라 봅니다. 제가 읽은 바로는 (그리고 책 한 권 번역한 바로는) 신비주의 실천은 주희가 언급한  '반일정좌 반일독서'가 전부라고 답했습니다. 다만 각자 체험으로 확인해야 하는, 신과의 일치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객관적으로 보여주기 어렵기 때문에 신비라는 말을 사용할 뿐입니다.


탄허스님 같은 상근기도 매일 많은 시간 정좌 내지 좌선을 하셨습니다. 신약성서를 잘 들여다보면 그리스도도 많은 시간 홀로 기도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번 거론했지만 이 일에 1만 시간을 바쳐 에크하르트가 말했듯이 목마른 자처럼, 그리고 글쓰기나 바이올린 연주처럼 매일 훈련하지 않으면 형식주의 종교인이나 지식 암송자가 될 뿐입니다.


그렇게 계속 의식이 상승하면 먼저 우울과 권태가 사라지며 참된 자기애가 생깁니다. 끝까지 진보하면 동아시아에서는 다 알고 있는 여섯 가지 신통을 체험할 수도 있는데 그것이 추구의 목표는 결코 아닙니다. 6신통 가운데 물 위를 걷는 기적은 신족통이라 합니다. 전 세계적 보고에 따르면 저러한 기적 내지 신통은 종교 불문하고 일어납니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길을 따르면 그분이 행하신 일 이상을 할 수 있다고 했음에도 그런 것들이 마치 기독교에만, 그리고 특별한 자에게만 일어나는 듯이 생각하는 게 기독교의 가장 큰 오류 가운데 하나입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기독교도가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마태 16:24 말씀처럼 자기를 부인하여 세상에서 프로그램된 '나'라는 의식을 지워내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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