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신비주의와 제도종교의 종말

목운 2020. 5. 25. 08:02

동아시아에서는 눈을 감을 때 만나는 허공을 하늘이라 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어에서 공(空)을 하늘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홀로 제단 앞에 있는 모습을 뜻하는 선(禅)은 하늘에 제사지낸다는 뜻을 가집니다. 우리 눈이 파악하는 물리적 하늘은 그저 빛을 인식한 것입니다.

말하고 싶은 것은 홀로 고요한 상태(空寂)를 마주하는 선(禅)이 바로 제사의 본 뜻이라는 것입니다. 천주교는 매일 미사(제사와 같습니다)를 권장하는데 그것(祭天)을 교회 예식 참여와 동일시하는 과오가 있습니다. 그저 사람들을 제도 교회에 묶어두려는 것이고 결국 통제수단에 그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적어도 홀로 정관(靜觀)하는 게 바로 제사라고 가르치지 않으면 잘못이라 생각합니다.

매일 정관하면서 궁극의 의식에 접하여(致知) 사물에 관한 지혜를 구하는 게 '격물치지'요 내면에 사사로움 없이 완전히 투명하게 사는 것이 '성의정심'입니다. 그래서 저는 격물치지 성의정심은 중화(中和)의 실천과 같다고 봅니다. 그러니 정좌(靜坐)하여 정관하는 일은, 희로애락이 발하기 전의 상태이자 우주의 근원인 중(中)에 일치하는 노력이며 그때 얻어지는 무조건적 사랑이기도 한 인(仁)으로 살자는 게 화(和)라고 생각합니다.

이 일을 매일 악기 연주나 무술 훈련처럼 몸에 배도록 하자는 게 에크하르트의 권유이고 한편 이 일은 초월적 은총이나 가피(이것을 특정 종교나 특정인이 독점한다고 하면 그것은 확실한 오류입니다) 없이 가능하지 않다고 봅니다. 위와 같은 가르침이 동서 신비주의의 요체더라 하는 것도 제 공부의 결론입니다. 이렇게 파악하고 나면, 그리고 지식과 정보공유가 중세와 달리 완전 자유로운 점을 감안하면 제도 종교는 수명을 다했다고 보는 것도 매우 타당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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