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325

극기복례의 길

골프존에 출근한 지 만 6개월 되었습니다. 마침 같은 대학 같은 과 후배 네 명을 만나 책을 나눠주고 간단히 요점을 설명했습니다. 대선 패배 극복 수단으로 책을 썼고 미디어를 완전히 끊고 지내는 변화를 이뤄냈습니다. 몸은 일에 몰입해 있지만 마음은 오직 공부에 몰입해 있습니다. 참되고 유일하며 평생 할 공부로는, 플로티누스가 제시한 길이기도 하고 이고 선생이 강조한 길이기도 한 이 길입니다. 에고의 특성이기도 한 탐진치를 소멸함으로써 신인합일을 이루는 공부가 그것입니다. 공자님과 수제자 안회가 실천한 심학이기도 합니다. 그 요점이 공자님과 안회의 대화로 모두 장자에 기록돼 있는데 대부분의 유학자가 장자를 이단시함으로써 길에서 벗어났다고 봅니다. 제대로 공부하고 실천한 이들은 당당히 장자의 제자임을 드러내..

단상 2022.12.12

몸이 나기 전 의식?

논리와 직관, 명상과 과학의 학습 등을 통해 이 몸이 나기 전 의식이 이 몸을 만들어 여러 체험을 하면서 지지고 볶는(?) 게 이승 삶이라는 것을 깨닫고 실감하는 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경전을 보면 우리가 불성 또는 진짜 나를 추구하는 게 맞다고 하는데 그 불성 또는 진여(또는 진아)는 나지도 없어지지도 않는다는 것이 또한 경전이 말하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정체성이라면 바로 신이라 할 수 있을 것인데 동서 모두 신인합일(또는 천인합일)을 중요한 삶의 목표로 삼았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천인 또는 신인이 합일한다면 곧 우리 존재가 신인 것이 아니냐는 게 제 판단입니다. 한편 우리 궁극의 실체 또는 정체란 의식일 수밖에 없으며 빛이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듯이 오직 하나의 의..

단상 2022.12.09

공부의 진도

1. 완전히 맡기는 것이 말만큼 쉬운 일은 아님. 존재의 근원에 모든 것을 완전히 맡겼다면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걱정거리 또한 전혀, 눈곱만큼도 없을 것이다. 뒤 명제를 긍정하지 못한다면 완전히 맡긴 게 아니기 때문이다. 2. 아무것도, 누구도 판단, 비판 하지 않는 게 말만큼 쉬운 게 아님. 운전할 때 앞 사람이 왜 저렇게 운전하지 하며 원망하는 마음이 저절로 드는데 그것은 앞의 명제를 실천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상 이 두 가지가 몸에 배어 있어야 공부의 진도가 좀 나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적어 둡니다.

단상 2022.12.08

생사를 벗어난 자유

제가 회두할 때 만난 경구가 '생사를 벗어나려면 탐욕과 애갈을 벗어나라'는 선가귀감의 말씀입니다. 지반묵타와 비데하묵타를 알고나서 느끼는 것은, 그 말들이 동아시아에서 말하는 '생사를 벗어난 경지'와 같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자는 몸을 가진 동안의 해방을 뜻하는 반면 후자는 몸을 벗어난 때의 해방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몸이 나고 죽는 것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에 대한 갈망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두 가르침이 같다고 여겨집니다. 비데하묵타란 '몸으로부터의 해방 또는 자유'를 뜻하며 죽음이란 것도 믿음이나 개념일 뿐 죽음은 없다고 합니다. 변하지 않는 의식, 곧 내 참된 정체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비데하묵타란, 체험이 아니라 지식이며 우리 정체성에 관한 선언입니다. 몸이 우리가 아니라는 것을 '뼛속 깊..

단상 2022.11.20

고통 없이 고통 받기

고1때 과제로 낸 독후감으로 우수상을 받았고 어쩌면 그것이 제 인문학적 성향을 결정지었는지도 모릅니다. 1차 대학시험 면접에서는 철학을 전공하겠다고 답했고 2차대학은 비록 상대였지만 전공으로 경제학을 택한 것도 나름 저런 성향에 기인한 것 같습니다. 요즈음 소명으로 삼는 모또가 탄허스님의 향상일로와 더블어 인문제세입니다. 인문학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소양이 국어와 외국어 실력이라는 것은 앞글에서 논했습니다. 인문학 공부에서 얻은 제 결론은 동서 최고 지성들이 탐구한 것은 궁극의 자유라는 것입니다. 20대에 몰입했던 프롬은 사회적 제약에서의 자유와 동시에 정신적 자유를 함께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나이 먹으면서 제가 보는 관점은 사회적 제약마저 허상인 동시에 인간 의식이 만들어내는 결과일 뿐이..

단상 2022.11.19

국영수 교육과 진리 탐구

저는 맹자님의 인작, 천작 구분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맹자님의 저 말씀은 천작을 구하는 공부를 인작 추구에 쓰는 세태에 대한 비판이자 진리추구의 길잡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이들에게 국어 및 외국어와 수학을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는 뜻은 세상에서 돈과 권력을 구하는 데 쓰라는 게 아니라 진리를 알아차리고 진리대로 살라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국어와 외국어 공부는 경전 이해에 꼭 필요한 것이고 수학 공부는 비과학을 피해가는 데 꼭 필요한 공부입니다. 매일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성현들이 가신 길이 보입니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의 편지는 우리 고통의 원인, 즉 자유롭게 사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을 가죽끈과 쇠사슬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마침 제가 오래 읽어온 채근담은 그것을 질곡이라 표현합니다..

단상 2022.11.15

삶의 노선

경제가 전부인 양 근심을 떨치지 못하는 사람과 대화할 때 '우리 생존과 생활은 보장돼 있다'고 말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심학을 하는 제 경우 일상의 방편은 전적으로 근원에 맡기지만 몸은 세상 프로그램에 맞추어 삽니다.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직장에서 3년여를 견뎠고 건설현장 경비생활을 두 번 했습니다. 짬이 나서 책을 썼고 정말 뜻하지 않게 동생 매장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오늘 나눈 대화는 주거비용에 대한 것인데 별다른 계산 없이 우연히 8년짜리 공공 임대에 들어간 저는 누구 못지 않게 저렴한 주거비용으로 살면서, 가족 단위로는 청년 주택 두 채, 자동차 세 대의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제 위와 같은 노선, 즉 생존과 생활은 근원에 맡기고 오직 영적으로 진보하는 일에 진력코자 하는 결심이 더 강해졌..

단상 2022.11.13

존재상태

음악 방송을 시청하다가 불현듯 드는 생각이 교향곡 실연장에 앉아 있는 것이 그 사람의 존재상태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동네에서 사는 게 그 사람의 존재상태인가? 우리는 부지중에 자신의 믿음대로 존재상태를 드러내며 삽니다. 제가 공부하는 교재에는 예금잔고나 가족, 사귀는 친구들이 진정한 존재상태의 시금석이 될 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 참 존재상태란 의식이며 그 의식이 전부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가진 몸과 마음은 변할 뿐 아니라 결국에는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몸과 마음이 사라져도 선택을 하고 존재를 돌아볼 의식이 있다고 전제하고 사는 길과, 아무것도 남지 않고 사라진다고 전제하고 사는 길이 있으며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둘 가운데 하나를 골라 거기에 따라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상 2022.11.12

깨달은 자의 삶

보이는 것들이 리얼하지 않다는 것, 즉 모든 것이 그저 잠시 리얼한 듯하지만 변한다는 것을 알고 그 앎 자체(곧 의식)만이 항구하다는 것을 항상 깨달으면서, 지나가는 풍경을 초연하게 바라보고 마치 거기에 몰입한 듯 즐기는 것 - 그것이 깨달은 자의 삶이라 합니다. 그것을 압축하여 표현한 문구를 발견했기에 공유합니다. The enjoyment that comes from watching a magic show provides amusement, even though the audience knows that what it is experiencing is unreal. 이 간단한 수련이 제대로 되었을 때 소위 완전한 자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뭘 모르고 하는 소리란 비판을 받을 수도 있지만 고통 없이..

단상 2022.11.11

행위의 원천

우리로서는 가장 좋은 것을 바라며 완전히 순명함으로써 자유롭게 되고 나아가 모든 것이 완전히 성취되는 것을 바라보게 되는데 그 근거는 우리가 행위자가 아닌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새 정독하는 책에서 행위의 원천에 대한 다음 글을 소개하려고 서두를 꺼냈습니다. "The true source of action is not the doer; it is a complex web of impersonal forces, illumined by awareness, that animate the body-mind like a battery animates a toy." '비인격적 제력(諸力)의 복잡한 그물'을 불가에서는 인드라망이라고 하는 것으로 압니다. 여러 힘을 비추고 방향을 정하고 드러나게 하는 것이 바로 의식..

단상 2022.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