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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절-1 중용 삼강령과 그 해석

"청하건대 중용을 해설해 주십시오." "앞에서 대략 말했지 않습니까?" "아직 명료하지 않습니다. 감히 여쭙건대 하늘의 뜻이 참나라 하는 게 무슨 뜻입니까?" "사람이 날 때 아이와 같이 고요한 품성이 참나입니다. 참나란 하늘의 뜻입니다." "참나를 따르는 게 도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따른다는 것은 순명한다는 것입니다. 근원을 따르고 참나로 돌아가는 것이 도입니다. 도란 참되고 온전한 것이며 온전한 그대로가 하늘의 도입니다. 온전함이란 고요하여 시끄럽지 않은 것입니다." (曰. 生爲我說中庸. 曰. 不出乎前矣. 曰. 我未明也. 敢問. 何謂天命之謂性. 曰. 人生而靜天之性也, 性者天之命也. 率性之謂道何謂也. 曰. 率, 循也, 循其源而反其性者, 道也. 道也者至誠也, 至誠者天之道也. 誠者, 定也, 不..

복성서 2016.04.05

2절-3

이르기를 “감히 묻습니다. 참된 앎에 이르려면 먼저 사물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여 답합니다. “물이란 모든 것을 말하고 격이란 다가온다는 말입니다. 즉 무슨 일이든 닥쳐올 때 마음을 맑게 하고 자명하게 판단하여 그 일에 얽매이지 않는 것을 지혜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曰. 敢問. 致知在格物, 何謂也. 曰. 物者, 萬物也, 格者, 來也, 至也. 物至之時, 其心昭昭然明辨焉, 而不應於物者, 是致知也,) 이 지혜는 두루 미칩니다. 지혜가 두루 미치기 때문에 뜻이 투명하며 뜻이 투명한 때문에 마음이 바르고, 마음이 바른 때문에 몸이 닦이고 몸이 닦인 때문에 집안이 가지런해지며, 집안이 가지런해지기 때문에 나라가 다스려지고, 나라가 다스려진 때문에 세상이 평화롭게 되는 것입니다..

복성서 2016.04.01

성리학과 그리스도의 편지

제 소견으로는 그리스도의 편지는 이미 깨달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진리를 현대적인 용어로 풀이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리학도 그렇게 해서 성인이 되는 게 목표였고 그 모범인 안회가 실천한 것이 도교적인 '심재'와 '좌망'이며, 그것은 정(情)에 해당하는 '생각과 감정'을 끊고 성(性)에 해당하는 우주 의식과 하나가 되는 방편으로서 편지가 제시하는 명상과 대동소이합니다. 다음 구절들은 '정'을 벗어나 '성'으로 살자는 성리학 이념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에고의 쌍둥이 추동력에서 완전히 자유케 되고 아버지-어머니-창조권능을 온전히 받아들이면 이 의 상태를 회복할 것이다.(332쪽)’ '은 초월적이면서 내 안에 있었고 내가 지속적으로 명상해갈수록 점점 더 광범위하게 내 의식에서 이기적인 충동을 지워버..

2절-2

묻습니다. "아예 생각을 일으키지 않아 움직이는지 움직이지 않는지를 모른다면 소리가 나도 들리지 않고 사물이 나타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까?" 답합니다. "보지도 듣지도 않는다면 어찌 정상적인 사람입니까? 똑똑히 보고 듣지만 보이고 들리는 것에 휘둘려서 마음이 혼란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참나를 실현한 후의 마음은 알지 못하는 게 없고 하지 못하는 게 없으며 고요히 움직이지 않아 지혜의 빛으로 모든 것을 꿰뚫으니 그것은 의식이 맑고 투명한 때문입니다. (問曰. 本無有思, 動靜皆離, 然則聲之來也, 其不聞乎, 物之形也, 其不見乎. 曰. 不覩不聞, 是非人也. 視聽昭昭而不起於見聞者, 斯可矣. 無不知也, 無不爲也, 其心寂然, 光照天地, 是誠之明也.) 대학에 가라사대 "참된 앎에 이르려면 모름지기 먼저 사물을 분..

복성서 2016.03.30

2절-1 마음 다스리는 방법 - 고요히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참나가 비춤

"근심도 생각도 없을 때 사물은 밖으로 향하고 감정은 안에서 작용하니 어떻게 그것을 제지합니까? 한가지 감정으로 다른 감정을 제어하는 게 가능합니까?" "에고란 참나의 치우친 작용이니 먼저 에고의 속성이 치우침에 있고 치우침이라는 것은 원래 존재하지 않음을 알아 마음을 고요하게 하여 움직이지 않으면 그릇된 생각이 저절로 그칩니다. 오직 참나가 밝게 비추면 치우침이 어디에서 생기겠습니까? 에고로써 에고를 그치게 하려는 것은 에고를 더 굳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問曰. 不慮不思之時, 物格於外, 情應於內, 如之何而可止也. 以情止情其可乎. 曰. 情者, 性之邪也. 知其爲邪, 邪本無有, 心寂不動, 邪思自息, 惟性明照, 邪何所生. 如以情止情, 是乃大情也. ) 일곱가지 감정이 서로 돌아가며 작용한다면 어떻게 그칠 수 ..

복성서 2016.03.28

<중편> 1절 참나 찾기 : 생각을 일으키지 않음으로써 에고를 잠재움

누군가 묻습니다. “사람들이 어두운 상태가 오래되었는데 참나로 돌아가 밝아지는 일은 점진적인 것인지요, 그 방법은 무엇입니까?” 나는 답합니다. “생각도 근심도 없으면 에고가 생기지 않습니다. 에고가 없으면 바로 올바른 마음이라고 합니다. 올바른 마음이란 근심도 없고 생각도 없음을 말합니다. 주역(系辭下傳)에 가라사대 ‘하늘 아래 무슨 생각이나 근심이 있더냐?’ 또(文言傳) 가라사대 ‘빗나감을 막고 온전함을 지킨다.’ 하였고 시경에는 ‘생각에 치우침이 없구나!’고 하였습니다.” (或問曰. 人之昏也久矣. 將復其性者, 必有漸也, 敢問其方. 曰. 弗慮弗思, 情則不生, 情旣不生, 乃爲正思, 正思者, 無慮無思者也. 易曰. 天下何思何慮. 又曰. 閑邪存其誠. 詩曰. 思無邪.) 또 묻기를 “그러면 됩니까?” 하니 답합..

복성서 2016.03.22

3절-2

자사는 공자의 손자인데 조부의 가르침을 습득하여 중용 47편을 맹자에게 전했습니다. 맹자는 말하길 "나는 40살 이후 그 어떤 것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맹자의 문중에 공손추와 만장 등 여럿이 이 가르침을 배우고 전했습니다. 진시황의 분서 때 중용 가운데 1편이 남아 전해졌으나 궁극의 진리(至誠之道)에 관해서는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중용을 배우는 자는 그저 제도적 고찰, 구절의 해석, 외적 권위에 대한 연구, 검술의 연마 등에 그치고 있어 그 본래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누가 제대로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子思, 仲尼之孫. 得其祖之道 述中庸四十七篇. 以傳于孟軻. 軻曰. 我四十不動心. 軻之門人達者. 公孫丑萬章之徒. 益傳之矣. 遭秦滅書, 中庸之不焚者一篇存焉. 於是此道廢闕, 其敎授者, 唯節行文章章句..

복성서 2016.03.15

편지의 시대적 의미

편지의 시대적 의미는 많지만 기독교(천주교) 생활을 40년 가까이 한 제게 크게 다가온 것을 몇가지 들어보고자 합니다. 첫째, 감상주의와 형식주의 배격입니다. 이것은 대부분 무의식중에 인간성을 닮은 하느님, 하늘의 검찰 같은 하느님을 상상하는 것과 관계 있습니다. 어려서 부모 따라 신자가 된 경우 대부분 여기에 해당하지 싶습니다. 예를 들면 통성기도를 해서 하느님의 마음을 돌려 놓으려는 것이나 교회에 예물을 많이 바칠수록 복을 많이 받을 것 같은 생각을 하는 것 등입니다. 둘째, 기적에 대한 애매하고도 비과학적인 태도를 교정해 줍니다. 이 경우는 예수의 신성 강조와 더불어 기독교만이 특별하다는 생각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홀로그램 이론이라든지 양자물리학, 전자기학 등을 이해하면 기적은 두루 ..

3절-1 : 가르침의 전수와 개인의 지향

옛날에 공자께서 이 가르침을 안회에게 전하셨고 안회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마음에 새겨 잊지 않고 실천하여 주제 넘지 않게 자신을 돌아보고 참나에 머물러 3개월 동안 진리에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안회는 거의 다 갔으니 자주 무아의 경지에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안회가 성인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으나 한 뼘이 미치지 못했을 뿐 그것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단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昔者聖人以之傳于顔子. 顔子得之拳拳不失不遠. 而復其心三月不違仁. 子曰, 回也其庶乎. 屢空, 其所以未到於聖人者. 一息耳. 非力不能也. 短命而死故也.) 그밖에 공부를 완성한 제자는 모두 공자께서 직접 가르치셨지만 타고난 소양이 다르고 성취한 바의 깊고 얕음이 있어 꼭같지는 않았습니다. 석걸과 호염이 창으로 자로를..

복성서 2016.03.04

'편지'의 핵심 수행법

제가 이해하는 한 '편지'의 핵심 수행법은 기독교 신비주의입니다. 그러니까 기독교 전통에서 제도 교회가 의심할 만큼 제대로 그리스도 의식에 접근한 수행법이 바로 마이스터 에카르트가 설교했던 신비주의 방법입니다. 즉 궁극의 실체 체험을 기반으로 하는 신인합일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이 체험 없이 그저 이데올로기로 작동했던 제도 교회는 이러한 스승들을 언제나 의심하고 심판했습니다. 여성의 경우는 마녀로 몰려 처형당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주 간단히 말해서 에고를 완전히 잊어버리는 경지에 가면 바로 신적 능력과 체험을 얻는 것인데 '편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에고 소멸을 말하고 있습니다. '편지'를 더더욱 신뢰케 하는 것은 그렇게 실체 체험을 하고 나면 그리스도마저도 의지하지 말라고 합니다. 백척간두 진일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