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성서

3절-1 중용 삼강령과 그 해석

목운 2016. 4. 5. 06:17

"청하건대 중용을 해설해 주십시오." "앞에서 대략 말했지 않습니까?" "아직 명료하지 않습니다. 감히 여쭙건대 하늘의 뜻이 참나라 하는 게 무슨 뜻입니까?" "사람이 날 때 아이와 같이 고요한 품성이 참나입니다. 참나란 하늘의 뜻입니다." "참나를 따르는 게 도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따른다는 것은 순명한다는 것입니다. 근원을 따르고 참나로 돌아가는 것이 도입니다. 도란 참되고 온전한 것이며 온전한 그대로가 하늘의 도입니다. 온전함이란 고요하여 시끄럽지 않은 것입니다." (曰. 生爲我說中庸. 曰. 不出乎前矣. 曰. 我未明也. 敢問. 何謂天命之謂性. 曰. 人生而靜天之性也, 性者天之命也. 率性之謂道何謂也. 曰. 率, 循也, 循其源而反其性者, 道也. 道也者至誠也, 至誠者天之道也. 誠者, 定也, 不動也.)


"도를 닦는 게 가르침을 펴는 것이란 무슨 뜻입니까?" "온전치 못한 것을 온전하게 하는 것이 사람의 도이며, 온전치 못한 것을 온전하게 한다는 것은 고요한 가운데 자명한 것을 택하여 굳게 지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도를 닦아 그 뿌리로 돌아가는 게 밝음입니다. 가르친다는 것은 이렇게 얻은 도를 세상에 펴는 것입니다. 안회가 그 모범입니다. 도란 떠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잠시라도 떠날 수 있다면 도가 아닙니다." (修道之謂敎何謂也. 曰. 誠之者人之道也. 誠之者, 擇善而固執之者也, 修是道而歸其本者明也. 敎也者 則可以敎天下矣, 顔子其人也. 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 非道也. 說者曰.) 


"또 그 마음이 잠시라도 움직이면 안 된다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움직이면 멀어지므로 도가 아닙니다. 한없이 변하는 것은 애초에 시끄러운 데서 떠나지 않은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군자는 보지 못하는 것을 삼가하고 듣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숨은 것보다 잘 보이는 게 없고 하찮은 것보다 잘 드러나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군자는 혼자 있을 때 삼가하고 조심하는 것입니다. (其心不可須臾動焉故也. 動則遠矣, 非道也. 變化無方, 未始離於不動故也. 是故, 君子, 戒愼乎其所不覩, 恐懼乎其所不聞. 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


볼 수 없는 것이 가장 밝게 드러나는 것이고 듣지 못하는 말이 가장 넓게 퍼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한번 움직이는 것이 바로 볼 수 없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하는 것이니 참나로 돌아가는 일은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군자는 혼자 있을 때 삼가하며 혼자 있을 때 삼가한다는 것은 생각이 끊어진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說者曰. 不覩之覩, 見莫大焉, 不聞之聞, 聞莫大焉. 其心一動, 是不覩之覩, 不聞之聞也, 其復之也, 遠矣. 故君子愼其獨, 愼其獨者守其中也.)


자습노트)

중용 삼강령인 참나(性), 도리(道), 가르침(敎)에 대한 해설입니다. 핵심 비결인 온전하고 진실함(誠)을 지키는 게 도를 닦는 것이며 온전하고 진실한 상태는 아이의 마음에서 찾을 수 있고 그 닦음의 모범은 안회에게서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 마음에 일어나는 게 없도록 하는 것이 바로 주일무적(主一無適)이며 정일(精一)인데 그래서 명상이 필수적입니다. 


우리 민족의 책상다리는 바로 이러한 전통에서 기원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컨대 언제나 참나에 깨어 있는 주일무적 상태에 있다가 일이 생기면 자명한 원리에 따라 처리하고 다시 무념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닦음의 요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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