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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에서 벗어난 경지

'편지'는 기존 기독교 신자로서 계속 침울하고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원인을 잘 분석하고, 기독교가 처음에는 좋은 의도로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무지한 지도자와 교리, 전통 등등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본 뜻을 가리고 왜곡했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를 비롯해서 편지에 공감하시는 분들에게 시원한 답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심사관 같은 신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애쓰고 교회가 얘기하는 죄를 지었을 때 죄책감에 빠지는 대신, 죄란 에고의 성향임을 이해하고 에고의 성향에서 완전히 벗어남으로써 신과 하나가 될 수 있으며 신과 하나가 되었을 때 교회가 약속하는 세속적인 복락 이상의 굉장한 체험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고에서 해방되었을 때 어떤 경지가 되는지를 '논설 12'와 여덟 번째 편지를 ..

창조 원리 이해하기

반복되지만 중요하기 때문에 또 올립니다. 논설 8에서뿐 아니라 편지 전체를 통해 계속 반복해서 강조되는 바는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우리 존재의 질료는 바로 신 의식과 같은 의식이며 창조 에너지이며 사랑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주를 꽉 채우고 있는 신이면서 우리 존재의 질료(재료)입니다. 다만 그 창조 과정은 신 의식이 진화와 개체화를 통해서 표현되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개체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전자기 작용을 수반하는데 그것이 부정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두려움과 분노, 증오 등으로 표현되는 감정입니다. 그 총체를 에고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우리 존재의 질료이자 근본이 신의식이고 창조 에너지이며 사랑임을 인식하고 에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한 다음에 에고의 영향력을 지워내면 우리는 바로 신..

복성서와 탄허록

제가 복성서와 탄허록에 집중하는 이유는 복성서를 지은 이고는 불교로 깨달음을 얻고 유교를 재해석하여 유교와 불교가 다름이 없음을 말하였고 탄허스님은 유학에 먼저 입문하셨다가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어 유교와 불교가 같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탄허스님은 여말선초를 사신 함허스님과 같은 행로를 가셨는데 사실상 복성서와 탄허록은 똑같은 수행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일단 탄허스님을 인용하면 '성(性)이란 칠정이 일어나기 전의 면목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리로서 불교의 4덕, 즉 상락아정(常樂我淨)을 갖추고 있는데 이것은 유교의 인의예지와 같다(탄허록 181쪽)'고 하십니다. 또 그 자리는 선악이나 시비분별이 없어서 대학의 지선(至善)과 같다고 하십니다. 또 덧붙이시기를 유교에서는 허령불매한 자리라고 하시는데 지눌..

단상 2016.02.26

깨달음 상태

신 의식이 가볍게 주입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 진화된 영혼은 그 체험이 너무나 아름답고 영광스러워 결코 잊을 수가 없지만 그것을 말로 온전히 형언할 수 없다고 보고한다. 그 체험은 마음의 진동주파수가 이미 높아져 있어서 의식 전체가 신 의식의 빛으로 채워질 때 가능해진다. 그것은 지능이나 뇌세포보다 '느낌'과 관계된 어떤 상태다. (300쪽) = 신비가들의 체험에 대한 진술이죠. 호킨스 님도 증언하듯이 수행은 선택에 있어서는 양이지만 진행에 있어서는 수동적이란 의미에서 음입니다. 지속적인 선택과 결단으로 내어맡기며 깨어 기다리는, 어쩌면 길고 지루한 과정입니다. 그것은 바이블에서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내면의 기쁨이 샘솟듯하기 때문에 끝까지 가게 되는 것이고 모든..

지각의 왜곡과 망상

그저 공유하고 싶어서 옮겨옵니다. 해결책은 어디에 있을까요? "인간은 근심하고,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자책하고, 죄의식에 사로잡히고, 싸우고, 고통스러워하는 데 익숙한 나머지 여타의 부정적인 정서와 태도, 감정 등을 살아가는 과정에 으레 따르는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참으로 정상적인 의식 상태는 모든 부정적인 요소에서 벗어난, 기쁨과 사랑이 충만한 상태다. 그밖의 모든 것은 지각의 왜곡 현상과 망상에 기반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인류의 마음이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방식으로 통제되고 영향받고 세뇌되어온 그런 판단기준을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나의 눈, 76~77)" 지각의 왜곡과 망상을 벗어나도록 돕기 위해 신의 소리를 천둥처럼 들으며 살던 소크라테스는 아테네를 헤매며 ..

에고 소멸과 극기복례

'내가 교회를 등질 마음이 없는데 왜 이단이냐?'라고 항변했던 마이스터 에카르트는 오늘날까지 로마 교회로부터 완전히 복권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제대로 된 기독교도와 비기독교도에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신학자이자 영성가입니다. 그의 말 하나 인용합니다. "누구든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마태 16:24)". 모든 것은 여기에 달려 있다.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돌려라. 그리고 그것을 발견한 그곳에서 자기 자신을 너로부터 놓아보내라. 이것이 가장 올바른 것이다. (영성지도 10쪽) 여기서 '부인'은 원문에는 잊음(forget)으로 되어 있어서 요즈음 서양 영성의 자아 소멸에, 동양 영성의 무아와 극기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그 다음에 나오는 '놓아보냄'에 조응합니다. 결국 철학 내..

단상 2016.02.11

수행의 목표와 에고 소멸

따져보고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 따위가 없이 바로 나오는 것이 '무조건적 사랑'(불교의 무주상 보시)에 딱딱 맞을 때가 참나(性)에서 나오는 행동이며 맹자께서 물에 빠지는 아이를 구하는 예에서 거론하신 측은지심의 행이 여기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법률 기타 두려움, 책임감 등등에서 나오는 행은 모두 에고에서 나오는 행이라 봅니다. 그래서 인간 사회 대부분의 조직 기타 일들이, 명분은 고귀한 성(性)을 내세우더라도 인간 의식 내지 에고(情)에서 나오는 것이죠. 혜능을 위시한 선사들이 행을 검증하던 수단은 일말의 주저없이 나오는 행뿐이었습니다. 그러니 수행이란 오직 에고의 완전한 소멸이 골인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신 의식(참나, 신성, 性)으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상 2016.02.09

'편지' 노선과 6바라밀

'그리스도의 편지' 노선은 대승(화엄 보살도)의 6바라밀의 실천과 거의 같다고 봅니다. 이미 거론한 논설 15의 경우 '일상에서 차별없는 무조건적 사랑 실천'이란 점에서 사실상 대승의 수행과 같습니다. 즉 첫째로 결단과 지향, 몸바침이 중요한데 이것은 결코 돌아보거나 다른 것(외도)을 구하지 않는 정진바라밀에 해당합니다. 둘째로 꾸준한 명상과 기도, 독서는 기본입니다. 이것은 선정과 지혜바라밀로 볼 수 있습니다. 지관쌍수에 해당하지요. 세번째로 중요한 게 악습을 끊고 사사로움이 전혀 없이 근신하며 의식에 빈틈이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특히 선의의 거짓말이나 과장 같은 것이 일체 없도록 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지계와 인욕에 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게 무조건적 사랑과 친절의 실천입니다. 특히 남녀노소..

2절-3

성인은 사람의 참나가 모두 온전해서 그에 따르기를 그치지 않으면 성인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예를 만들어 행동을 바르게 하고 음악을 지어 감정을 온화하게 합니다. 평화로운 가운데 즐기는 것이 음악의 기본이고 행동에 있어 예에 맞는 것이 예의 기본입니다. 따라서 승차했을 때는 고귀한 소리를 듣고 걸을 때도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니 음악이 있는 생활을 중단하지 않습니다.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데 있어 예법에 따르며 그런 까닭에 사람들을 가르치는 데 탐욕을 버리고 참나가 명하는 진리에 따르도록 합니다. (聖人, 知人之性皆善. 可以循之不息而至於聖也. 故制禮以節之. 作樂以和之. 安於和樂. 樂之本也. 動而中禮, 禮之本也. 故在車, 則聞鸞和之聲. 行步則聞珮玉之音. 無故不廢琴瑟, 視聽言行. 循禮而動..

복성서 2016.02.07

현실 창조와 참된 영성의 길

논설 2가 제게 강한 인상을 준 것은 콘돔에 대해 돌직구 진단 때문입니다. 결혼생활 30년을 지나간 제게 천주교회가 비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며 피임반대를 하지 않았더라면 낙태는 안 했을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결혼 생활 안에서 이루어진다 하여도 다투고나서 주변 사정 때문에 또는 미숙해서 감정상 앙금을 가진 채로 나누는 섹스가 해롭기 때문에 결국 그런 것들이 오랫동안 쌓이면 이혼과 같은 불행에 이르는 것도 그 누구 탓이 아니라 의식의 법칙상 당연한 것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요컨대 전체 우주는 전자기의 상호작용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내는 모든 의식 에너지의 작용입니다. 당연히 의식적 존재인 인간의 사언행위와 감정은 인력-척력을 가진 전자기 작용이며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체험하는 물질현실의 창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