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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바람

범세계 차원에서 인간의 가장 위대한 이벤트가 있다면 올림픽이고 그 이유는 그 정신이 평화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가장 잘 표현한 분이 독일 대통령인데 인용하자면 "고대로부터 이어온 올림픽의 평화정신을 사람들에게 다시 불러 일으킬 수 있다면 평창 올림픽은 이미 성공적이다."는 것입니다.오늘 매일 읽는 명상집에서 영감을 받아 이 세상을 떠날 때 "평화와 사랑"의 사람이었다는 평으로 남는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해당 내용을 옮겨보겠습니다. "신의 현존 체험은 언제든 가능한데 우리 내면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선택을 기다린다. 그 선택은 평화와 사랑을 제외한 모든 것을 신께 바침으로써만 이뤄진다. 그 보답으로 언제나 함께 했으나 이제껏 체험치 못했던 참나이기도 한 신성이 드러난..

단상 2018.03.01

근본 결단

동양학 권위자이신 이기동 선생의 중용 강의를 유튜브로 들었습니다. 요컨대 중용은 소위 하늘나라 패러다임으로 사는 법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 문화에서 하늘은 기독교의 하느님이나 하늘나라를 지칭합니다. 그 대척점에 땅의 패러다임이 있습니다. 거의 모든 영성 내지 종교는 방편적으로 신-인간, 하늘-땅, 참나-에고의 이원적 설명 체계를 가집니다. 제가 볼 때 중용의 하늘 패러다임은 기독교의 천국에 대한 설명과 일치합니다. 천국 패러다임은 지금 여기에서부터 우리 안의 참나를 최대한 구현해 나감으로써 신인합일의 삶을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와 유교가 실패하는 지점은 그것이 세상 운영 내지 적응 수단으로 작동하는 데 그치는 경우입니다. 즉 끝까지 밀어붙여 진짜 군자나 성인이 되는 데까지 가야 하는데 대부분 적..

단상 2018.02.17

죽기 좋은 날

제가 '학이시습'을 함께하는 동학(同学)이자 붕우(朋友)들이 모이는 페이스북 '그리스도의 편지읽기' 그룹에 제 삶의 지표가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고 오늘은 죽기 좋은 날이란 확신이 들 때까지 훈련하는 것'이라고 썼습니다. 다음은 그 말에 대한 주석입니다. 삶은 여정이고 그 여정은 이승에서 '곧고 좁은 길'을 끝없이 올라가는 일이라는 게 제 학습의 결론입니다. 이 길을 가려면 근본 결단이 이뤄져야 하는데 그 결단은 '탐욕과 애갈'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게 '선가귀감'의 말씀입니다. 탐욕과 애갈을 지워낸 귀결은 생사를 벗어나는 것이며 다른 말로 초탈이며 이원성의 극복입니다. 그 경지가 바로 '죽기 좋은 경지'이며 그때 비로소 유교 최고 실천명제인 인(仁)과 서(恕)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인과..

단상 2018.02.09

죽기 전에 죽기

아침에 만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말씀인즉 신 안에 머무는 필요조건은 "자기 자신과 모든 것을 버리고 감각이 파악할 수 있는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시간과 영원 안에 존재하는 어떤 피조물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삶의 개선을 위해 읽거나 쫓아다닌 가르침들을 돌아보니 저런 상태란 결국 몸을 버린 경지가 아닐까 합니다. 마하라쉬는 우연히 몸이 완전히 죽는 체험을 하고나서 완전히 깨달아 평생 사람들을 감화하는 삶을 살았지요. 대승불교의 삶이란 것도 먼저 모든 것을 부정한 후에 세상을 향해 대자대비의 삶을 사는 게 답이라 하는 것입니다. 제가 배운 코스 가운데 마음수련원은 비록 가상적이지만 급진적으로 자신을 죽이는 체험을 권고합니다. 어떻게든 세상에 대해 한번 완전히 정을 떼어보는 것이..

단상 2018.01.28

자부심 내려놓기

의식 향상의 방편으로서 내려놓기(letting go)는 호킨스 님의 의식지도를 안내로 삼고 있습니다. 제 경우 대체로 낮은 단계인 무기력, 슬픔, 두려움을 거쳐 욕망, 분노 내려놓기에 집중하고 있는데 다음 단계인 자부심의 경우 더욱 걸리적거리는 것을 느낍니다. 물론 각 단계는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필요한 측면이 있습니다. 분노에서는 무기력이나 슬픔, 두려움 같은 것을 극복하는 에너지를 얻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자부심에서 욕망이나 분노를 내려놓은 힘을 얻게 됩니다. 또 어떤 감정은 그 앞뒤 감정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슬픔을 거의 다 내려놓으신 분은 그 앞뒤로 무기력과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경계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일상생활을 하면서..

호킨스 방하착 2018.01.26

동양 영성의 핵심 수행법 (3)

조철(朝徹)은 실상 심재, 좌망과 표리를 이루는 것으로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이라 번역을 소개합니다."남백자규가 여우(女偶) 도사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수십년 나이가 들었음에도 여전히 아이 얼굴이십니다. 비법이라도 있습니까?' 여우가 말했다. '글쎄다. 도를 연마했을 뿐이다.' '배워서 도를 얻을 수 있습니까?' 그 사람이 물었다. '당연히 불가능하다.' 도사가 말했다. '너는 그럴 위인이 못 된다. 복량의의 경우 성인의 자질은 많았지만 성인이 되는 길을 몰랐다. 내 경우는 성인이 되는 길은 알지만 성인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그 자질을 실현시켜 주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복량의에게 그것을 가르치느라 몸이 단 것이다. 하지만 성인의 자질을 갖춘 사람이니까 그 길을 가는 길이 쉬울 것이라고 생..

동양 영성의 핵심 수행법 (2)

안회가 공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나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길로 말이냐?" "저는 인의를 잊어버렸습니다." 안회가 말했다. "아주 좋구나.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공자가 말했다. "예악을 잊었습니다." 괜찮구나, 하지만 아직 멀었다." 공자가 말했다. " 안회가 다시 말했습니다. "망각 속에 빠져들었습니다." 공자가 반색하며 말했다. "망각 속에 빠졌다니 무슨 뜻이냐?" "몸뚱어리와 사지를 버렸으며 지각을 내던졌습니다. 망각 속에 빠져들었다는 것, 곧 좌망이란 이를 이르는 말입니다." "무한과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호오가 그쳤다는 뜻이다. 변화한다는 것은 매이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자네가 내 앞에 가게 되었네. 나는 그대의 발자국을 따르리라." [顏回曰:「回益矣。」仲尼曰:「何謂..

동양 영성의 핵심 수행법 (1)

성(性)의 자리를 유교에서는 중(中)이라고도 하며 시간과 공간이 끊어진 자리이고 따라서 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을 말하며 천하의 근본 또는 우주의 핵심체입니다(탄허록 187쪽). '서경'은 도심(道心, 人心에 대비하는 마음으로 참나에 해당)이 미약하므로(人心惟危 道心惟微) 오직 도심에 집중(惟精惟一 允執厥中)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불교에서 언제나 참나를 의식하며 에고를 부려야 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보면 요컨대 두 종교에 공통하는 바는 명상을 통하여 생각이 끊어진 참나 자리에서 세상 일을 경영하고 향유하자는 것입니다. 즉 안회는 심재(心齋)를 통해 무아를 깨치고 좌망(坐忘)을 통해 이원성을 초극하여 무한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대목은 '장자'에 기록되어 있으니 결국 유교가 불교는 물론 도교와도..

훌륭한 사람 되기?

조카 녀석이 카톡으로 신년 인사를 하길래 제 아이들에게 하는 똑같은 말을 해주었습니다. "네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게 바로 효도요 충성이다." 그런데 구체성이 없어서 이곳에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누구나 '다 안다'고 여기는 통속적 가르침에는 구멍이 많기 때문입니다.훌륭한 사람이란 세상에 도움이 되는 선한 일만 하는 것을 넘어 의식이 매일매일 향상해서 그야말로 거룩한 경지까지 가야 합니다. 매번 반복하지만 학교를 포함한 세상의 가르침은 사회에 잘 적응하고 에고 관점에서 뛰어난 인간이 되는 데 그칩니다. 종교도 대부분 영적 에고에 사로잡혀 낮은 수준에 갇혀 있습니다.그러니 먼저 명상을 해야 합니다. 명상을 어렵게 여기고 또 '각을 잡고' 배우거나 가르쳐야 한다는 것도 벽을 만드는 일입니다. 홀로 고요히 시간..

단상 2018.01.03

풍요와 참나 실현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과 바라는 것이 이뤄지는 것을 막는 것은 무의식적인 죄책감과 왜소감이다. 특히 무의식은 우리에게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성취시킨다. 우리의 부정성과 왜소한 이미지에 매어 있을수록 우리는 자신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며 다른 사람에게 쉽사리 흘러들어가는 풍요함을 무의식적으로 누리지 못하게 된다.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된다."는 말이 생기는 원인도 거기에 있다. 자신을 왜소하게 보면 우리는 가난이 마땅하다고 여기게 되고 무의식은 그것을 반드시 실현시켜준다. 우리 왜소감을 버리고 내면의 무구함을 재확인하게 되면, 그리고 우리의 관대함, 개방성, 신뢰할 만함, 자비와 믿음에 대해 거부하지 않게 되면 무의식은 자동적으로 삶의 환경을 재조정하기 시작하여 우리 삶..

호킨스 방하착 2017.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