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영성,현대인

제2장 - 맥락의 과학

목운 2014. 8. 4. 07:53

맥락의 과학

더 설명해나감으로써 자명해지듯 의미란 추상적이면서 납득을 거친 맥락에서 나오는 반면 과학, 이성, 그리고 사회적 담론은 주로 내용물 차원(선형)에서 작동한다. 의식 자체에 내재적이지만 맥락은 언급되고 확인되거나 정의되지 않는 게 보통이다. 따라서 이제까지 진실에 관한 과학이 실제 존재하지 않았듯이 진실 검증이나 확인의 수단이 없었다. 따라서 인간이 실수하고 반복적으로 끝없는 재앙을 겪는 것은 불가피하다(예, 다른 결과를 바라면서 거듭거듭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


다음 장에서 다루겠지만 맥락의 확장을 통해서 갈등의 해결은 수월해진다. 하나의 예로서 물질계는 산지다, 해양이다, 화산지역이다, 숲이 우거지다든지 모래 사막이 있어 건조하다고 설명할 수 있다. 또한 적도여서 덥다, 극지여서 얼음에 덮였다고 할 수 있다. 이 말들은 그저 택해진 관찰 지역을 가리키는 서술적 용어일 뿐이므로 그 다른 용어로써 서로 다르거나 분리된 세상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인공 위성처럼 아주 높은 고도에서 보면 지표의 모든 특성을 동시에 볼 수 있다. 그것들은 분리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그것들은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서술적 용어는 한정된 지역과 관점을 가리키는 것이지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구별이 애매한 것이 해결되는 것은 제한된 지역성에서 포괄적 전체로 맥락을 확장시킨 데서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결과다. 과거에 지구가 둥근가 평평한가, 또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지 그 반대인지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같은 식의 난관이 지금 과학-이성 대 종교-영적 진리와 신앙으로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맥락을 확장해보면 실체에는 실상 갈등이 있을 수 없고 갈등으로 보이는 것은 그저 자의적이고 제한된 관점(인위적 구조)에서 나오는 진술의 결과일 뿐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패러다임 제약은 에고의 자기애적 중핵이 지배한 결과인데 에고는 자신의 승리를 위해서 진리와 온전성을 희생시킨다. (과학은 400대 의식 수준에 그치며, 비선형적 맥락, 즉 영적 실재는 500 이상이다.) 그러한 시야의 제약은 지혜와 행복에 장애가 될 뿐 아니라 인간의 평화와 진보를 저해한다.


또 승리욕으로 인하여 진실성이 훼손되는 결과가 초래된다. 그것은 핵심 논점을 직접 다루는 대신 인신 공격에 빠진 스콥스 재판의 사례에서 보듯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실상 진화와 창조는 한 가지이며 같은 것이다(의식 측정 지수 1,000). 유일한 차이라면 진술의 관점이다. 그런데 진술 관점은 그 자체가 패러다임의 한계일 뿐이다.


진리에서 이탈함으로써 재앙적 결과가 반복적으로 생기고 따라서 그것은 그저 지적 호기심으로 치부해 버려서는 안된다. 세대에 걸친 인류의 고통 원인이 되는 바로 그런 요소들이 스콥스 재판에 내재하고 있다. 오류의 전파는 대규모 전쟁과 죽음, 파괴로 귀결된다. 따라서 세계가 다시 핵 전쟁의 위협에 놓여 있는 만큼 패러다임과 맥락을 이해하는 일은 긴요한 과제다.


인간 에고의 자기애적 중핵에서 나오는 허영심은 무한하고 끝이 없어서 대량의 인종 말살이나 자멸에 이르기까지 한다. 실상이란 에고 환상과 반대됨에도 불구하고 고통의 기원은 자기애적 에고 자체의 눈먼 중핵에서 기인하는데, 바로 그 중핵에 주기적으로 폭발하여 전 대륙의 인구를 대량 살육하는 시한 폭탄이 놓여 있다. 만일 예수와 붓다, 그리고 위대한 스승들이 말씀한 대로 '무지'가 죄와 고통의 기반이라면 진리를 알고 검증하는 능력은 인간 구원의 열쇠가 될 뿐 아니라 가장 긴요한 도전이 될 것이다.


인간 정신은 자기애의 중핵에 의존함으로써 훼손된다. 이 결함은 부인하고 억누르고 젊잖게 무시된 채로 있다. 그러나 이 결함은 '메시아적 자기애의 과대망상증(의식 수준 30으로 측정됨)'으로 불리는 조건에서 심하게 드러나고 두드러지게 되었다(진실 대 거짓, 15장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