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정복성

1장 12

목운 2015. 2. 13. 11:27

에고는 체험자 기능이라는 한 지점에 집중하는데 그 기능은 이득을 얻는 데서 즐거움과 생존을 구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습니다. 에고는 행복에 대해서 얻어내고 소유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무엇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체험자는 무언가를 "취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습니다. 체험자 기능은 즐거움을 얻고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연히 영적 지향을 갖지 않는 한 영혼에 관심이 없습니다. 관심을 가진다면 목표는 바뀌며 즐거움의 근원이 온전히 내면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끊임없는 즐거움의 원천이 소아가 아니라 참나라는 것을 알면 세상에 의존하지 않게 됩니다. 에고는 욕망의 충족을 선형 세계에서 구하지만 진정한 행복은 비선형 세계에서 나옵니다. 즐거움과 행복을 위해서 체험자에 의존하지 않음으로써 행복의 근원이 존재 자체에 있으며 참나의 실현이 바로 행복임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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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의 체험자 측면은 목격하는 현상에서 항상 이득을 끌어낼 태세가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무례하고 독자적인 "나"가 상상하는 주체를 자신의 실체라고 주장할 뿐임에도 그렇습니다.
 에고는 순차적으로 펼쳐지는 현상들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며, 독자적인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어합니다. 에고는 언제나 구체적 감정을 갖다 붙일 태세가 되어 있는데, 감정이란 의견이나 마찬가지로 언제나 에고의 관점이나 고정관념을 반영한 것이거나, 아니면 최소한 자신의 정체성과 현실에 대한 감각에 있어서 자신이 원래부터 꼭 있어야 한다는 주문입니다. 체험자를 자신의 실체로 보지 않게 되면 에고에게 중대한 변모가 발생하는데 그것은 이원적 내용물에서 비이원적 맥락으로, 즉 소아에서 참나로 바뀌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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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는 실체도 아니고 삶의 근원도 아니며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해체되기 쉽습니다. 기원은 오래 되었지만 본질적으로 주체일 수 없습니다. 그것이 단지 환상임이 밝혀지기 전까지만 주인노릇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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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실상 몸 자체를 체험하는 게 아니라 몸의 오감을 체험할 뿐입니다. 따라서 몸에 대한 인식은 오감의 집합일 뿐인데 몸을 관장하는 뇌 영역이 오감의 입력 정보를 기록한 후 뇌세포(뉴론) 작용을 거쳐 몸의 이미지를 복제해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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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대한 집착은 오감과 "내것"이란 개념에 대한 것입니다. 따라서 "내것"이란 것과 "내"가 관리하는 것은 반드시 "내가 누구인가" 하는 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몸과의 동일시는 에고의 고정관념으로 귀착됩니다. 자기를 몸과 동일시하지 않으려면 단지 몸을 "나"라기보다 "그것"으로 보는 게 필요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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