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접신과 견성

목운 2023. 7. 8. 12:22

오늘 직장 동료이면서 제 책을 진지하게 읽어보신 분이 묻기를 접신을 체험했냐고 합니다. 우리는 우선 용어에서부터 고정관념 때문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알고 보니 오랫동안 개신교 생활을 한 동료는 예수를 만났는지 하는 질문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견성이든 접신이든 존재의 근원과 소통하는지 하는 질문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신비주의 또는 종교, 심지어 철학도 실존적으로 같은 열망을 가진다고 봅니다. 그 열망이 다름 아닌 존재의 근원과 만나고 소통하는 것이며 그 경지를 신을 만남(接神) 또는 참 본성을 봄(见性)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중(中)이란 바로 존재의 근원(천하지대본)이라고 말하는 중용은 거기에 이르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존재의 근원과 만나는 일이 바로 깨달음이기도 하며 동시에 천국에 드는 일이고 여래의 집안에 태어나는 일과 같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그때 모든 소망이 이뤄지고 완전한 자유가 가능하기에 '자네 견성했어?' 또는 '예수 만났어?' 등과 같은 질문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저 동료가 '제가 예수를 만났거나 접신을 했다면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제 답은 사람에 따라 존재의 근원에 합치하는 정도는 바오로처럼 일순간에 이뤄지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처럼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전들 바오로처럼 일순간에 삶이 바뀌는 체험을 왜 마다하겠습니까? 제 경우는 확실히 회두하여 최근 10여년 신의 안배와 은총을 체험했다는 의미에서는 확실히 신을 만났으며 매일의 노력을 통해서 더욱 강렬하게 신과 하나된 삶을 살고자 할 뿐입니다. 어쨌든 오랜만에 제 책을 진지하게 읽고 이런저런 논의를 해준 친구를 만나 기뻤습니다.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헐렁한 옷  (0) 2023.08.04
한류의 지속성  (0) 2023.07.21
영어, 예체능, 그리고 수행  (0) 2023.07.07
이생망  (0) 2023.07.02
자연사  (0) 2023.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