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정복성

10장 6

목운 2015. 4. 4. 07:28

고차원 <영적 진리>의 근원은 심상을 벗어납니다. 이 결정적 사실을 지능으로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원래 이원적이고 제한돼 있어서 "저것"에서 "이것"이 나온다고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고급의 영적 <실체>에서는 이원성이 해소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저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원성의 한계를 초월함으로써 구도자와 <도>가 <하나>가 됩니다. 그것이 <참나의 실현>이며 <비추임>이며 <깨달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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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은 비이원성을 설하지만 종교는 주로 이원성의 영역을 설합니다. 깨달음은 이처럼 엄격한 노선인데 여기에서는 이원성이 환상인 만큼 그것을 완성하려고 하는 것은 쓸모없는 짓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에고는 초월되어야 하는 것이며 그대로 환상이라고 봅니다. "좋은 인품"은 칭찬할 만하지만 그 자체로 깨달음으로 귀결되는 게 아닙니다. 깨달음에 이를 가능성이란 의식 자체의 본성에 대한 높은 이해력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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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짐, 지향 및 헌신을 포함해서 조건이 맞으면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릴 결정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총력을 다하고 "전심전력" 지속적으로 집중해서 에고의 감지자(체험자) 측면을 포기하는 일에 매진할 수도 있습니다. 이 과정은 순식간이어서 마음을 초월하여 바로 체험자 기능의 "처리 경계선(processing edge)"에 도달하게 해줍니다.

 이 "처리 경계선"이 보통의 "나" 감각이 자리하는 실제 위치이며 실체(있는 그대로의 세계, 데카르트의 실체[res extensa])와 감지 또는 체험된 세계(데카르트의 인식자[res cogitans])와 1만분의 1초의 간격이 있습니다. 이 분리가, 소아가 가지는 이원성의 환상에 있어 핵심요인이자 중심이며 <비이원성>의 근본 <실체>(참나) 파악에 장애요소입니다. 분리되고 개별적이고 독자적이라는 소아의 환상을 초월함으로써 (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모든 생명을 <일자>로 재맥락화 해주는) 참나의 <광휘>와 <일자>가 출현합니다.  


 역주) 여기에서 호킨스 박사는 인간을 컴퓨터에 비유해서 컴퓨터 영상처리 용어인 가장자리(edge, 경계선과 같은 말로 디지털 영상에서 밝기 변화가 급격히 일어나는 부분으로 인식의 중요한 단서입니다)란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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