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해보니 요한복음과 요한1서의 저자는 같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문구만을 보면 저자는 심한 염세주의자 같습니다. 왜냐하면 복음 12장 25절은 마태 16:24(마르코 8:34, 루가 9:23)과 같은 취지의 말씀인데 '자기를 버리고'에 해당하는 것을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 요한 1서 2:15에서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면서 구체적으로 세상에서 나온 것이란 육체의 쾌락, 눈의 쾌락, 재산을 가지고 자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야말로 힌두 사상이라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이 모순을 극복하는 답이 우리의 선(禅) 사상 안에 있다고 저는 봅니다.
즉 한 번 완전히 정을 뗀 후 세상의 필요에 부응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웃 사랑'의 필요 외에는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보통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고 할 때 선에서는 산과 물을 한번 완전히 부정한다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현세와 절연하되 세상이 요청하는 일에 부응하는 것을 '심우도'에서는 입전수수(入廛垂手)라 합니다.
여기서 정을 떼거나 세상을 완전히 부정하는 일을 대충 할 때 세속과 분간이 어려운 부패한 기독교가 되는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루터의 본래 의도대로 제사장 또는 성직자(교직자, 목사 등등)가 없는 기독교가 정답이라는 생각도 덧붙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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