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성인과 대인 그리고 적자지심

목운 2020. 4. 13. 08:29

앞으로 위대하고 거룩한 인간이 될 기회가 있을까? 누구에게나 내면 깊이 그런 욕망이 있다고 본다. 드러나게 국사를 맡아 위기를 헤쳐나간 분들만 그러한가? 현재 정부 여당 수장들은 내 세대 분들로서 학교로 치면 3~5년 선배뻘이다.

직장생활 하는 동안 은행업에 나름 큰 기여를 했다고 자부하지만 임종을 앞두고 돌아보니 도저히 석연치 않은 바가 있다. 하지만 에크하르트 훈화에서 답을 찾는다. 내면이 신적이면 밖엣일이 아무리 하찮게 보이더라도 그것은 신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 전통에도 대인이라 함은 갓난 아이 마음(赤子之心)을 가진 자를 일컫는다고 되어 있다. 결국 내면의 성화가 전부다. 왜냐하면 외적으로 위대해 보이더라도 내면이 도덕적으로 천한 자를 우리는 존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에 격몽요결을 읽고 그것은 인간으로서 불가능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스승도 없던 차에 교회 다니는 것으로 갈음했으나 어느 순간 에고를 극복하는 일을 불가능한 것으로 치부하고 '신념의 마력'류의 자기계발서에 의지했다.

은퇴할 무렵을 돌아보면 그저 내 존재를 지탱해 왔던 것은 사회적 신분뿐이었다. 왜냐하면 명예퇴직 후 3년을 놀았는데 돌아보니 내면이 걷잡을 수 없이 망가져 있었다. 부도를 당하고 나서야 내면을 근본적으로 바로잡아야 하겠다는 결단을 했다.

내면의 상태가 전부다. 중용의 성(诚)이나 맹자의 천작(天爵)으로 가르치려 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내면이 완전히 투명하면서 천리에 따라 언제나 최고선을 구현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바로 지어지선(止於至善)이다.

그 일을 위해 행하는 신기독수기중(愼其獨守其中)의 방편이 정좌(静坐)인 것이다! 책상다리는 이러한 가르침과 지혜가 문화적 DNA로 우리에게 그대로 전수된 증거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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