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요령과 요점

신비주의 실천의 두 기둥

목운 2021. 7. 16. 08:41

[신비주의 실천의 두 기둥]
질문과 동시에 답이 얻어진 경우라서 씁니다. 세상을 구한다고 나서다 병에 걸리는 딱한 경우가 있습니다. 수행의 전통에선 세상을 구한다거나 정의 실현을 위해 나서지 말라고 합니다. 어제 거론한 호킨스 박사는 자신의 의식을 높이는 일이 세상을 구하는 지름길이라 합니다.

그러나 아예 속세와 인연을 끊고 느닷 없이 산 속이나 사막으로 가는 것은 지양하자는 지혜를 실천한 것이 조선 500년이었습니다. 한편 이 쪽의 극단은 세상사에 몰입해서 혈연의 우상화와 토지의 과독점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는 너는 답이 있냐 하면 저는 그리스도의 '자기 부인(마태 16:24)'과 이 가르침의 이면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버리고 떠나 있음(abgeschiedenheit)'의 숙달을 듭니다.

세상사를 모두 미리 수용하되 초탈한 마음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매일 수양해야 합니다. 동물에서 나온 몸의 기능엔 이런 일을 저절로 할 수 있는 무엇이 없습니다. 역사를 보면 인간만이 여기에  도전하는데 그것은 '축의 시대' 이후 과제처럼 되어 있고 특히 신비주의 전통에 그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습니다.

종교학자에 따르면 힌두교나 유교, 특히 신유학을 비롯한 동양종교는 기본적으로 신비주의이며 그 실천의 뿌리는 경전독서와 정좌입니다. 그와 관련한 말씀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여기서 주회옹이 주희라는 걸 최근에 알았습니다. "歐陽子方夜讀書 朱晦翁半日靜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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