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기독교 극복의 필요성과 대안

목운 2020. 7. 15. 05:54

기독교도로서 처음엔 유교, 불교 등은 자연종교고 기독교는 계시종교라고 배워 무의식적 우월감을 가졌습니다. 게다가 교황 무류권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하지만 약 35년간의 기독교 생활이 삶에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원인은 저런 우월감 내지 선민 의식이 서양 인종주의의 뿌리일 뿐 아니라 유태 전통을 계승하다보니 신에 대한 생각이 매우 원시적인 데 있다고 봅니다. 즉 삐지고 편애하며 화내고 복수하는 신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성인들도 배출했지만) 많은 기독교도들이 괴물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히틀러와 거기에 부역한 기독교를 보면 금방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동아시아의 종교가 훨씬 낫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핵심 수행원리나 우주관에서 결코 기독교의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기독교를 통째로 버릴 필요도 없으니 저는 동아시아 언어로 기독교를 풀어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둘을 융합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이고 선생이 유교 용어로 불교를 새로 씀으로써 신유학의 원조가 된 것과 비슷합니다. 당말 이후의 유교는 이고를 계승한 주렴계와 주렴계를 계승한 주희를 거치면서 불교를 많이 탈색했지만 기본적으로 불교를 지양 발전시킨 것입니다.

부패한 불교를 정화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지만 신유학도 지배이데올로기가 됨으로써 생명력을 잃고 기독교에 자리를 내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기독교가 거의 자연사 직전의 운명이라서 새로운 언어로 삶에 통하는 가르침을 말할 필요가 있는데 그 대안으로서 우리 문화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유불선이 매우 유용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현대 과학의 성과와 기독교 극복을 위한 서양인들의 자기반성 노력을 보태면 아주 괜찮은, 그래서 탈근대적인 종교가 하나 나올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제 거론한 나 하나의 의식 전환이 지금 이후의 세계 변혁에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제가 볼 때 그리스도가 한 마리 양 찾기 내지 한 사람의 회두를 두고 천국이 기뻐한다는 생각에 닿아 있다고 봅니다.

즉 모든 사람이 세상을 고치겠다고 나와서 갑론을박을 벌이는 것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의식을 정화하고 향상하는 데 더 힘을 기울인다면 어차피 진화적 시간 또는 천문학적 시간을 달려갈 진화의 역사에서 보다 실제적으로 변혁을 가져오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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